민의(民意)에 의한 통치를 향한 열망(熱望)은 언제나 역사적 대전환을 만들어왔다. 장기 집권 시도와 3·15 부정선거로 민의를 왜곡했던 정권에게 시민들은 4.19 혁명으로 종언을 알렸다. 무려 26년 동안 군부 독재에 억눌렸던 그 열망은 80년 5월과 87년 6월 민주항쟁을 거쳐, 대통령 직선제와 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87년 체제와 민주주의 이행(transition)을 만들어냈다. 이후 지방자치와 교육감 직선제 역시 풀뿌리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뜨거운 마음이 모여 맺은 열매였다.

2016년, 국정 농단에 맞서 시민들은 촛불 혁명이라는 유례 없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전국 각처의 촛불집회로 시민들은 민의와 연대의 위대함을 새삼 확인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목소리는 시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촛불 시민들의 열망과 자신감을 등에 업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민의를 우선순위에 두고 각종 개혁을 추진했다.

자치경찰제는 경찰 행정에 민의 반영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다. 자치경찰위원회는 시·도 경찰청장을 지휘·감독해 일선 경찰관들이 시민 생활과 밀접한 경찰 사무를 처리하게 하는 기구이다. 물론, 자율방범대, 녹색어머니회처럼 경찰을 돕기 위한 자발적 결사체도 있지만, 위원회는 시민의 대표로서 경찰 행정에 민의를 반영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지휘·감독기구라는 점에서 본질적 차이가 있다.

지난 5월 출범한 광주 자치경찰위원회는 시민에게 한 손을, 일선 경찰관에게 다른 한 손을 내밀며 함께 걷고자 한다. 대외적으로는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부터 시작했다. 7월 동구 주민자치협의회 대표들을 만나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어린이 교통안전 대책과 예방 교육 ▲학교폭력 사각지대 순찰 ▲여성, 청소년 안전 대책 강구 ▲지구대·파출소 인력 보강 등 의미 있는 제안도 받았다. 이는 치안 시책에 반영·정착될 것이다. 최근에는 서구 주민자치협의회, 청년·대학생, 자율방범연합대와 계속되는 간담회는 경찰 행정이 시민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상의하달식(Top-Down) 의사결정 체계에서 하의상달식(Bottom-Up) 체계로의 변화를 꾀한다. 기존에는 본청에서 정한 과업 중심의 경찰 행정이었다면, 이제는 일선 경찰관 중심의 경찰 행정을 지향한다. 계급 사회의 경직성과 행정력·예산 부족으로 추진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위원회와 시·도 경찰청 간 동반자적 관계뿐만 아니라 지자체 예산을 투입해 해결할 수 있게 됐다. 광주 경찰청 간담회와 경찰 직장협의회 대표 간담회를 통해 폭염 사각지대였던 의경들에게 챙이 넓은 모자, 시원한 의복 등을 지급한 일은 현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한 대표적 사례이다.

새로운 제도 도입에는 항상 막연한 불안과 거부감이 있기 마련이다. 경찰관의 소속 및 인사권 문제, 지휘·감독의 범위와 절차 문제 등 이상과 현실 간 괴리도 아직 남아있다. 물론, 제도의 정밀한 기획과 훌륭한 법조문도 중요하지만,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제도의 취지에 대한 공감과 신뢰, 협력이 가장 필요하다. 민의에 의한 경찰 행정에는 시민들의 공감대와 참여, 그리고 일선 경찰 공무원의 적극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역사적 대전환을 만들어왔던 시대 정신으로 출범한 광주 자치경찰위원회가 한 손은 시민에게, 나머지 한 손은 경찰에게 내밀고 있다. “우리, 함께 걸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