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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의 방식

박덕은(문학박사·화가·전 전남대 교수)

2021년 09월 22일(수) 11:24
박덕은
지나왔던 길을 되짚어보면 수많은 걸음들이 보인다. 홀로서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청춘의 걸음이 보이고, 어지러운 슬픔 안고도 자식을 키우기 위해 바들거렸던 중년의 걸음도 보인다. 그 걸음들이 모여 사랑이라는 집을 짓고 삶의 탑을 쌓으며 여기까지 왔다.

생각해 보면, 생의 전환점마다 걸음의 방식은 달랐다. 현실로부터 몸을 숨기고 싶을 때는 땅에 발을 채 내딛지 않고 도망치듯 걸었다. 그러다가 일이 잘 풀릴 때면 아침의 걸음처럼 가볍고 산뜻하게 걸었다.

어렸을 때였다. 방문을 열었는데 방안까지 걸어 들어온 아침 햇살이 상큼했다. 햇살, 그 아침의 걸음은 이제 막 눈을 뜬 꽃잎처럼 화사했다. 가볍게 반짝이는 걸음은 어둠의 지층을 뚫고 올라온 기쁨이요 시작을 대하는 설렘이었다. 나는 아침의 걸음처럼 모든 날들을 반짝이는 마음으로 걷고 싶었지만, 숨막히게 분주한 청춘의 한낮을 헉헉대며 종종걸음으로 건너야 했다.

결혼하고 가족이 생긴 뒤부터 귀갓길 걸음은 따스해졌다. 아이들에게 줄 과자를 사 들고 통통 튀듯 걸었다. 저녁의 걸음은 세상의 모든 생명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초원에서 풀을 뜯던 양떼도 양우리로 돌아갔고, 새들도 고단한 나래짓을 접고 둥지로 돌아갔다.

하루를 끌고 오느라 피멍 든 노을의 걸음이 모든 걸 내려놓고 비우는 때도 이때쯤이다.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청춘의 시간을 소진하고 노년 같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노을의 걸음이 조금은 무겁고 어눌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땅거미가 깔리고 조금씩 지워져 가는 노을의 붉은 걸음은 애잔하다. 쇠락해져 가는 삶의 여정을 보는 것 같아 조용히 묵상하게 된다.

칠순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전시회를 준비하며 그림을 걸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 엉덩이와 허벅지에 마비가 왔다. 그때부터 지팡이에 의지하며 굴곡진 시간을 고통스레 걸어야 했다.

하루는 고단한 행로를 굽이굽이 넘어가는 노을의 걸음이 마비가 온 내 노년의 걸음 같아 노을 진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석양은 노을빛의 하늘방을 서녘에 만들더니 고단한 새들이 쉴 수 있도록 그 방을 내주었다. 따스한 노을의 품에서 위로를 받았다. 노을은 한 벌의 침묵을 걸치고 참선하러 들어간 스님의 뒷모습 같았다. 그때, 내가 가야 할 인생길을 묻고 싶었다. 노을은 내가 어떤 걸음을 걸어야 할지 알려줄 것만 같았다.

입적을 앞두고 있는 마지막 걸음을 본 적이 있다. 화순 운주사에 와불로 누워 있는 그 걸음. 일몰을 앞두고 있는 노을의 걸음 같았다. 라틴어에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죽음이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인생길을 걷는 걸음 걸음이 더 값질 수 있다는 뜻이다. 와불은 인생의 마지막 걸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몸속을 가득 채운 아픔 속에서도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놓으며 수행자들을 품는 마지막 걸음이 읽혀져 마음이 아리다.

그래서 그런지 늦가을 노을의 걸음은 운주사의 그 마지막 걸음 같아서 더 쓸쓸하다. 이제 곧 소멸해 가는 겨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황홀한 계절은 사라지고, 지우고 비워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껴서일까. 늦가을 노을은 내 마음속을 한껏 센치하게 만든다.

쇠락해져 가는 지상의 모든 것들에게 측은지심으로 다가가는 그 걸음에서 따스함을 느낀다. 낙엽 위로 어스름을 끌어와 덮어 주는 늦가을 노을의 걸음이 왜 그리 따스하면서도 쓸쓸했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마비가 왔던 다리는 다행히 보름 뒤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라도 마비 증상은 다시 올 수 있기에, 더 늦기 전에 생의 마지막 걸음을 준비해야 한다.

인생의 늦가을인 노년으로 접어든 나는 이제부터 노을의 걸음을 익혀야 한다. 일몰처럼 갑자기 생의 시계가 멈출지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며 영혼이 여린 생명들을 포근하게 품어야 한다. 노을은 비움의 빛깔로 여린 것들을 감싸며 누군가의 가슴에 따스하게 다가간다. 나의 여생도 노을의 걸음처럼 그리됐으면 좋겠다. 해가 지고 있다. 저녁 위로 노을이 붉게 걸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