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을 거부하고 ‘오채찬란’하게 재탄생한 수묵의 향연을 만날 수 있는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수묵의 본고장 목포와 진도에서 열리고 있다.

‘오채찬란 모노크롬-생동하는 수묵의 새로운 출발’을 주제로 펼쳐진 이번 수묵축제의 장은 오는 31일까지 목포와 진도 운림산방 등 6개 전시관에서 이어진다.

폐막을 보름여 남긴 수묵비엔날레 행사장에는 관람객과 학생들로 북적였다. 목포문화예술회관에 마련된 1관의 주제는 ‘수묵 없는 수묵(無墨水墨)’이다. 수묵의 재료적 한계를 초월한 국내외 작가 73명의 현대작품을 만날 수 있다.

수묵인 듯 서양화인 듯 구분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수묵은 도처에 있다’라는 주제처럼 관객을 반긴다. 우국원의 ‘Tomorrow, Tomorrow, I love your Tomorrow’는 캔버스에 오일로 그린 작품으로 파스텔톤 색감과 다양한 동물 그림이 거리감 없이 관객의 눈길을 붙든다. 김지희의 ‘포장된 미소’는 보석이 박힌 왕관을 쓴 호랑이의 얼굴이 강렬하다. 이만익의 ‘주몽의 하늘’과 김병종의 호쾌한 필치로 만나는 ‘상선약수’ 등 작품을 지나면 윤석남의 설치작 ‘사람과 사람없이’가 기다린다. 나무 위에 아크릴로 버려진 유기견들과 이를 보듬는 할머니 모습을 형상화 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비엔날레 3관(유달초등학교) 2층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 국내외 작가 21명의 작품 42점을 18분 분량의 영상으로 전시한다.

각 전시장은 오방색으로 각각의 대표 색깔을 정해 통일된 색감을 보여준다. 1전시실은 청, 2전시실은 먹의 개념을 느낄 수 있는 방이다.

박대성의 ‘천년배산’은 박 화백이 불국사에서 2년간 머무르며 불국사의 전경을 묵의 농담을 통해 표현한 작품으로 9m에 육박하는 거대한 스케일이 관객을 압도한다.

이종상의 ‘풍우독도’는 독도의 비바람 속에 수묵으로 그림을 그려 화폭에 담았으며, 한국 추상화의 거장 김환기의 사위이자 한국 단색화의 거목으로 불리는 윤형근 화백의 작품 ‘청다색’도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윤석원의 ‘사람과 사람들’은 유명한 화가들의 얼굴을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작품으로 작품 속 천경자, 월전 장우성, 김환기, 김복진, 이중섭, 박수근, 이쾌대, 백남준 등 얼굴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엔날레 1관 6갤러리 전시 전경.

이밖에 변시지, 이재삼, 허윤희, 제여란, 오병욱, 이배, 김지훈 등 국내 미술계를 주도하고 있는 작가들의 현대적 수묵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또한 보성 대원사에서 현장스님이 관리하던 법정스님의 차시와 그림은 별도의 방에 연출돼 공간적인 여유로움과 위안을 준다.

이소영의 작품은 수묵 애니메이션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며, 배종헌 작 ‘길을 묻네-터널 속 콘크리트 벽면의 검댕이로부터’는 터널의 먼지로 그린 산수화로 눈길을 끈다.

전시장인 목포문예회관 중앙엔 높이 5~6미터의 이이남 미디어아트작 ‘박연폭포’를 만날 수 있고, 비엔날레 1관 마지막 출구에선 미디어아트 작가 박상화의 인터렉티브 아트 ‘목포 판타지아-사유의 정원’이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편 제1회 비엔날레부터 주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목포문예회관은 비좁은 공간이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전시를 관람하기엔 다소 집중력이 떨어지고, 빛에 노출된 중앙 천정 등 전시 환경 또한 적절치 않아 향후 지속적인 비엔날레 개최를 위해서는 전시장소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해 보였다.

비엔날레 4관(남도전통미술관)

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에 마련된 비엔날레 2관에서는 ‘시대의 수묵 -경계의 확장’이란 주제로 김종경, 김선두, 김천일, 홍정호, 김호득 등 25명의 지역 수묵화가 작품을 통해 남도 미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공간은 목포 유달초등학교(옛 심상소학교)에 마련된 비엔날레 3관이다. 이번 수묵비엔날레를 통해 소개된 이 공간은 ‘수묵 멍 때리기 좋은 곳’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 이율배반적 수묵의 최신버전’이란 주제로, 김지아나, 문성식, 손동현, 이해민선 등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 수묵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특히 2층은 넓은 강당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영상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참여하지 못한 국내외 작가 21명의 작품 2점씩을 대형 스크린에 18분 분량의 영상으로 보여주며, 특별히 제작된 사운드가 압도적 크기의 스크린과 어울려 현대적인 느낌을 더한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1관 3갤러리에서 이만익의 작품 ‘주몽의 하늘’을 설명하고 있는 이건수 총감독.

생활 속 디자인 수묵은 진도에 구현됐다. 운림산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진도 비엔날레 4관(남도전통미술관)과 5관(소치기념관)에서는 각각 ‘물(水), 불(火), 돌(石)’, ‘바람(風)’이란 주제로, 김용호, 손문일, 유의정, 이상협 등 공예, 도자기, 의류·패션, 현대미술 등 수묵이 우리 생활 속에서 어떻게 녹아있는 지를 보여주어 흥미롭다.

비엔날레 6관(진도향토문화회관)은 ‘묵연(墨緣) - 상생과 화합의 수묵이야기’란 주제로 김은자, 박병락, 박항환 등 국내외 69명의 국제교류전 및 영·호남 교류전이 펼쳐지고 있다.

주전시장인 목포와 진도 외에도 광양 전남도립미술관,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나주 한국천연염색박물관 등에서 특별전시가 진행되고, 구례, 보성, 해남, 영암 등 도내 9개 시·군, 15개 전시관에서도 시·군 기념전이 열리고 있다.

오는 27일에는 진도 운림산방에서 한복디자이너 차이킴의 작품으로 수묵구름숲 패션쇼가 진행되며, 이어 포레스텔라, 바라지팀의 출연하는 수묵노을 콘서트도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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