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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남의 영화 속 나머지인간<8>양들의 침묵

정교한 심리학 퍼즐 게임과 현대인의 사회적 침묵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 밑바탕
유년기 트라우마와 심리적 불안정
나방은 정체성 변화시키려는 상징

2021년 10월 22일(금) 14:09
양들의 침묵 스틸컷.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 1991년)은 정교한 심리학 퍼즐 게임이다. 연쇄살인마 버팔로 빌을 추적해가는 거대한 플롯을 기반으로 여러 상징과 주제가 정교하게 결합해 다양한 의미를 담아낸다.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밑바탕에 단단히 깔린 영화다. 이 때문에 인물, 소재, 편집 등에 숨어있는 의미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 흥미를 더한다.

영화 제목 속 양들은 누구며, 상반된 침묵과 울음소리는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생긴다. 여러 호기심과 의문을 던지며 시작하는 영화가 양들의 침묵이다. 양들은 살인사건의 피해자들, 나아가 선량한 대중을 의미한다. 그리고 현대인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의 상징이다.

더욱이 강요된 침묵은 습관이 된다. 현대인 모두도 사회적 침묵에 익숙하고, 이런 트라우마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 반증하듯 현대인은 피로 사회가 만든 심리적 질병에 모두가 침묵한다.

주인공 클라리스 스털링은 어린 시절 도축장에 끌려가는 양들의 슬픈 울음소리를 듣고 괴로워한다. 불쌍한 양들을 위해 울타리를 열어 주지만 양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아니 도망가지 못한다. 절대복종에 길들어 있기 때문이다. 스털링은 도살당하는 양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정신적 충격으로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 한니발 렉터는 자신의 환자를 살해하고 그들의 인육을 먹은 엽기적 살인마다. 동시에 상대방의 생각과 욕망을 꿰뚫어 보는 지적이고 세련된 인물이기도 하다. 극단적 성격의 소유자다.

100분의 상영시간 동안 고작 19분 출연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앤서니 홉킨스의 명연기는 파격적이다. 머릿속에서 표정과 호흡을 잊을 수가 없을 정도다. 더욱이 스크린 밖 관객까지 스크린 속으로 빨아들이는 마력이 있다.

여기에 연쇄살인마 버팔로 빌도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존재다. 그의 심리를 통해 유년기 트라우마와 심리적 불안정이 현재와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클라리스는 어린 시절 양을 구해주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로 인해, 버팔로 빌에게 납치된 캐서린을 필사적으로 구하려고 애쓴다. 이 교차편집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현재까지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방증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영화 속 나방은 큰 상징과 의미를 지닌다. 나방은 번데기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존재로 변화를 의미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려는 심리를 나방에게 투여하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 사이의 설정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이 도움이 된다. 그는 인간의 정신 영역을 이드, 자아, 초자아로 분리했다.

영화에서는 세 개의 영역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렉터는 이드, 클라리스는 자아, 크로포드는 초자아를 의미한다.

처음 클라리스가 렉터를 만나기 위해 겹겹의 철창을 지나 감옥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무의식이 내면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방탄유리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오가는 클라리스와 렉터를 디졸브하는 장면은 자아와 이드가 별개가 아니라 동일한 심리 현상임을 보여준다. 또한 크로포드는 사회적 도덕 가치를 통해 렉터를 억압하지만, 클라리스를 거치지 않고서는 이드를 접할 수 없음도 암시한다.

“아직도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이 질문은 연쇄살인 사건이 해결된 뒤 렉터가 클라리스에게 묻는 질문이자 해답이다. 영화 속 명대사다. 영화가 끝나도 머릿속을 맴도는 속삭임이다. 아니 큰 울림이다.

아마 영화를 보는 관객은 물론 현대인에게 물어보는 암시적 대사일 것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했냐는 격려의 속삭임이다. 범인이 죽고 나방이 날아가는 화면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을 통해 클라리스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관객에게 변화의 날갯짓을 전달한다.

양들의 침묵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시나리오 작가이자 첫 관객인 영화인 셈이다. 양들은 침묵하지 않고, 날개를 통해 변화의 공간으로 날아간다.



‘이드, 자아, 초자아’

- 성격의 삼원구조 메커니즘



프로이트는 정신을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분류했다. 이런 견해를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성격의 삼원구조라 부른다. 이 세 가지 성격 구조들은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작동 원리 또한 차이가 있다.

이드는 육체적 욕망과 본능적 충동을 본질로 하는 리비도의 저장소다. 먹고 자고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가 생존하는데 필수적 본능과 욕구를 담당한다. 이드에 자리 잡은 본능적 욕구는 쾌락의 원리에 의해 작동된다.

인간으로 느끼는 당연한 충동과 욕구가 있는 곳이다. 때문에 이드는 쾌락을 좋아하고 논리적이지 않으며 본능적 선택을 한다. 단순히 욕구 충족을 위해서 발동하는 영역이다. 맹목적이며 인간이 처한 현실적 상황과 어울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아는 나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자아는 현실에 따라 변하면서 끊임없이 이드와 초자아 사이의 중심을 잡는다. 본능을 통제하면서 인간답게 행동할 수 있도록 조절한다. 자신을 통제하는 주체가 자아다.

자아는 현실에 기반을 두고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조절한다. 이드를 통제하고 초자아에 내재한 불안감, 죄책감, 부적절함을 완화하면서 부정, 치환, 억압 등 다양한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

초자아는 이상에 기반을 둔다. 도덕이나 양심과 같은 판단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윤리적인지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된다. 우리 안에서 더 큰 사회의 기준을 반영하고, 자기 비판적이고 도덕적 영역이다.

이드는 우리에게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지만, 초자아는 우리가 사회의 구조물 안에서 자신에게 허용할 수 있는 경계선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초자아는 죄책감, 자책, 수치심, 허약함, 의무 같은 감정의 원인이 된다.

세 가지 정신 영역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끊임없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거친다. 어느 한쪽의 균형이 무너지면 다양한 정신적 반응과 행위로 발현된다.

영화는 이드, 자아, 초자아를 통해 사회의 소수이며 소외된 나머지 인간들의 침묵과 울음소리를 관객에게 들려준다.

/사진 출처=오라이언 픽처스

양들의 침묵 스틸컷.
양들의 침묵 포스터.
양들의 침묵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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