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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사랑,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길

한강 5년 만의 신작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제주 4·3' 생존자의 길고 고요한 투쟁의 서사

2021년 10월 26일(화) 18:04
[전남매일=오지현 기자]지난 2016년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5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지난 2019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전반부를 연재하면서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이 소설은 그 뒤 1년여에 거쳐 후반부를 집필하고 다듬어 완성됐다.

소설은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꾼 꿈으로부터 시작된다.

눈 내리는 벌판을 배경으로 한 이꿈에는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마치 묘비처럼 등성이까지 심겼다. 이후 어느 순간 발아래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경하는 무덤들이 모두 바다에 쓸려가기 전 뼈들을 옮겨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어쩌지 못한 채 꿈에서 깨어난다.

경하는 이 꿈이 그 무렵 꾸었던 다른 악몽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책에서 다룬 학살에 대한 꿈이라 생각하고 친구 인선과 함께 그 꿈과 연관된 작업을 영상으로 만들기로 한다. 그러나 그 뒤로 몇 해 동안 힘든 시기가 찾아오자 그 계획은 무산된다.

그러던 겨울 어느 날, 경하는 병원에 있는 인선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는다. 인선이 통나무 작업을 하던 중 사고로 두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병원에 간 경하에게 인선은 제주 집에 가 혼자 남은 새를 구해달라 부탁하고, 그렇게 제주를 찾은 경하는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폭설과 강풍을 만나게 된다.

한강 작가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인선의 집에서 경하는 70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이에 얽힌 인선의 가족사를 마주하게 된다.

온 가족을 잃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감옥에 갔던 아버지와, 부모와 동생을 한날한시에 잃고 오빠마저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채로 남겨진 어머니. 학살 이후 오빠의 행적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고요한 싸움이 그렇게 정심에게서 인선에게로, 인선에게서 경하에게로 스며든다.

한강은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고 말했다. 이 사랑은 마지막까지 사람과 삶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던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마음에 있을 것이다. 사랑은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 없는 막막한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게 하는 유일한 그 무엇이다.

하지만 사랑은 그가 가진 힘만큼이나 무서운 고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선은 정심이 일평생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의 삶이 자신에게 스며드는 것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 사랑을 외면하지 못한다.

경하 또한 인선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으로 겹쳐지는 것에 대해 힘겨워하면서도 이를 내치지 못한다.

힘듦을 알면서도 그 사랑에 손을 내밀어 기어이 고통을 택하는 것이 오직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길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책을 덮으며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에 위로를 받는다. 작별하지 못하는 것은 고통이지만 작별하지 않는 것은 고통이자 사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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