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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나이에 다니는 생애 첫 학교 ‘광주희망학교’
2021년 11월 25일(목) 16:00
1968년도 화순희망재건중학교(위)와 현 광주희망학교(아래)
황혼의 나이에 다니는 생애 첫 학교 ‘광주희망학교’

“따뜻한 봄날이 왔어요. 가난한 흥부네 집 처마 밑에도….” 합창하는 소리가 창 너머로 울려퍼진다. 간단한 문장을 한 어절씩 또박또박 읽는 소리의 주인공들은 초등학생이 아니다. 무거운 돋보기를 쓰고, 연필 쥔 손에 자글자글 주름이 진 어르신들이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학업을 할 수 없었던 이들은 성인문해교육기관인 광주희망학교에서 생애 처음 글을 배우며 제2의 인생을 시작 중이다.

글·사진 민슬기 기자

◇50여년 역사 지닌 광주희망학교

광주 북구 누문동에 위치한 광주희망학교(이사장·교장 한미준)는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를 몸소 실천하는 곳이다. 전신은 지난 1968년 화순군 이양면에서 개교한 희망재건중학교다.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한 이들을 위해 운영되던 학교다. 50년이 지난 지금은 누문동(주간)과 계림동(야간)에 각각 둥지를 틀고 주경야독 중이다.
광주희망학교는 광주에서 유일하게 초등 3단계, 중등 3단계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별도의 검정고시 없이 학력을 취득할 수 있어 적정한 학업을 거치지 못하고 적령기를 넘긴 이들에게 큰 위로와 도움이 되고 있다. 재학생은 60~80대의 고령층이다. 생업을 책임지기 위해, 혹은 여자라서 더 배울 필요가 없다는 사회적 통념 등 다양한 사정으로 이제야 만학도가 되었다. 이들은 기초적인 지식을 쌓고 능력을 함양 시켜 지난 설움은 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쌓아간다. 기역, 니은 등 자음조차 모른 채 방문한 이들이라도 3개월 가량이 지나면 소위 ‘글을 깨친다’. 1년 정도면 쉬운 글자는 읽거나 쓰는게 가능하다. 한해 졸업생은 평균 30여 명이다. 연령대가 있다보니 사회활동은 물론 가정 내 대소사, 건강 등의 이유로 졸업 요건을 채우지 못해 졸업생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몇 년 후에라도 다시 방문해 반드시 해당 학년은 채운다.
취재 당시에도 재입학을 문의하러 방문한 이가 있었다. 수 년 전 재학한 학생이었음에도 교장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다시 시간적 여유가 생겨 다닐 수 있게 되었는지 인근 주민에게도 권해 함께 다니기로 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한미준 교장(49)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살아온 이들은 못 배웠다는 점이 평생의 한이다. 언제가 되더라도 배워야겠다는 순수한 열망이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황혼의 생애 첫 학교, 생활 전반 아우른다

주간으로 운영되는 누문동의 광주희망학교는 현재 120여명이 재학 중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200명이 넘는 학생들로 북적였고, 초등 3단계의 경우 학급 정원 탓에 대기자가 있을 정도였다. 노인일자리와 비대면 수업 여파로 학생 수는 줄었지만 학구열은 여전하다. 반은 현재 8개 반이 운영 중이다. 단계별로 초등(3), 중등(3), 중등 예비반(2) 등이다. 교육과정은 각 3단계다. 단계별로 주 3회, 일 2시간 이상 진행되며, 3분의 2이상 출석을 해야만 이수자격을 얻는다. 적절한 단계는 검증을 거쳐 배치된다. 중학 학력인정교육은 국어,사회,수학,과학,영어 등 필수과목과 1개의 선택과목으로 구성된 교육을 받는다. 광주희망학교는 설문을 통해 1단계는 파닉스(영어발음기초), 2단계는 한문, 3단계는 생활영어를 배치했다. 생활 전반에서 영어가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보니 영어를 배우겠다는 열의가 높다는 후문이다.
중등 예비반의 경우 초등부를 졸업해 중등부로 진학을 앞뒀지만 입학하기 전 영어와 수학, 한문 등 기초를 더욱 탄탄히 다지는 곳이다. 주목해야할 점은, 지정 교과서만으로 교육을 마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글을 읽고 쓰는 것 외 국가로부터 보장받는 평등권, 자유권, 참정권, 사회권, 청구권 등 가장 기본적인 의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인권 회복’을 목표로 한다. 이에 격변하는 시대에 맞춰 대응하고, 디지털문해교육도 아우른다.
초등 2단계와 중등 1단계를 담당하는 윤사인 강사는 “글과 셈을 몰랐기 때문에 공적 서류도 남에게 의존하던 어르신들이 많다”며 “고지서는 물론 안내문이나 반상회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우편도 읽고 해독하는데 도움을 드려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계산기 사용법, 문자메시지 보내는 법 등 사소한 것까지 가르치고 있다. 이같이 살뜰한 보살핌과 가르침으로 자신감을 가진 학생들 중 한명은 대학에 진학하는 쾌거도 이뤘다.

◇숨 거두기 전까지 얻어가던 배움의 기쁨

배움에 대한 한이 컸던 탓에 자식들은 번듯하게 키워낸 늦깎이 학생들은 이제는 자녀들의 열렬한 지지와 성원을 받는다. 디지털문해교육으로 자녀에게 문자메시지 보내기를 하면 핸드폰을 분실한줄 알고 깜짝 놀라 전화가 오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애정 어린 답장이 즉각 온다. 자녀 이름에 들어가는 모음을 한평생 ‘ㅔ’로 알았다 비로소 ‘ㅐ’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학교에 나와 배움을 이어간 이도 있다. 일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출결이 성실하고 학습 태도 또한 좋아 대학 진학까지 목표로 둔 학생이었다. 젊을 적 양장점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겠다는 포부까지 갖췄다. 중등 2단계에 접어들 무렵, 낯빛에 드러날 정도로 건강 상태는 나빴으나 성실히 정진하던 그는 마지막 출석 후 사흘 뒤 숨을 거뒀다. 병원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배우는 기쁨을 놓지 못했다.
꽤나 큰 현장의 소장이었지만 글을 몰라 계약서를 작성할 때면 손에 붕대를 감아 다친 척 했다는 남자의 이야기도 있다. 일이 바쁘다보니 한가한 겨울에 인근 여인숙에 머물며 3개월 단위로 공부했다. 남들보다 늦었지만 누구보다 의미있는 졸업이었다. 하지만 남들 앞에서 연필을 쥐고 글씨를 쓸 수 없어 난항을 겪었다. 잠시 연락이 끊겼던 그는 처음으로 자필 계약서를 작성한 날 학교로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표했다.
한 교장은 “학생들이 일평생 배우지 못해 자신감이 상당히 결여돼 있는 상태”라며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것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가는 날이 가장 큰 기쁨

양부님(75)학생은 초등부에서 가장 열의가 높은 학생이다. 한 마디라도 놓칠 새라 맨 앞줄에 앉아 귀를 쫑긋 세웠다. 몸의 체중까지 선생님과 칠판 쪽으로 쏠려있다. 가장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솔선수범하는 그는 “학교 가는 날 내 기분은 째진다(입이 벌어질 만큼 매우 기뻐하거나 즐겁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세 살이 되던 해 부모를 여의고 큰댁으로 보내진 뒤 아홉 살부터 식모살이를 했던 그는 글을 배울 기회조차 없었다. “큰댁에 두 살 터울인 고모가 있었는데, 공부방에서 글을 배우는 것이 부러웠다. 몰래 들어가 책을 들춰보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얼마나 배우고 싶었나 모른다.”
양 학생은 어렴풋 들리는 ‘가갸거겨’ 소리를 듣기 위해 포대자루 밑에 숨어 숨죽일 때도 있었다며 눈물 지어보였다. 오남매를 번듯하게 키워내고 금지옥엽 막내딸은 대학까지 보냈지만 못 배운 한은 가슴에 맺혀 있을 때 지인을 통해 문해학교를 알게 됐다. 일흔이 넘어서야 문해학교를 통해 글을 깨우친 그는 지금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들이라고 말한다. 학교에 오는 기쁨을 표현한 시화로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다.
그는 “반복해서 가르쳐줘도 나이가 있으니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화 한번 안낸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초등부를 졸업해 중등부까지 진학하고 싶다”는 열의를 보였다.
/민슬기 기자         민슬기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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