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규호 광주문화재단 예술상상본부장

앞뒤 안 가리고 펑펑 운 적이 언제쯤이었을까요? 한 달도 더 전 일이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펑펑 울며 들었던 연주회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바로 ‘오월 어머니의 노래’ 연주회입니다.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에서 10월 말 열렸습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도 객석이 가득 찼습니다. 5월 단체, 진보 예술인들을 비롯해 광주광역시장, 국회의원, 구청장 등 높은 관직에 계신 분들도 거의 다 오셨습니다. 그만큼 이 음악회가 가진 의미가 크다는 것이지요.

첫 곡은 김옥희 어머니의 ‘30번의 남자’였습니다. “세월 가면 잊혀질까 그리운 당신/오월의 꽃으로 져버린 당신/잊으려고 애를 써도 사무치는 당신/상무관 내 남자 30번의 남자/싸늘한 당신을 지게에 싣고/비틀비틀 걸어갔던 금남로 십리길/아 아 상무관 내 남자 30번의 남자”.

지원동에서 마을 이장을 하시던 남편은 군의 무차별 사격을 목격하고 동네 사람들 안전을 위해 귀가를 종용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볼을 관통 당해 돌아가셨습니다. 젊은 아낙이었던 김옥희님은 남편의 시신을 지게에 싣고 도청 앞 상무관까지 걸어갔습니다. 41년 전 5월을 담담하게 노래로 풀어내는 그 처연함에 객석에서는 첫 곡부터 울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첫 곡부터 울음 터진 객석

아들을 잃은 이근례 어머니는 아예 노래를 못하십니다. 가사를 읽기만 하는데도 힘겨워하시던 어머니는 끝내 복받치는 설움과 슬픔을 참지 못하십니다. 그해 아들을 잃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뼈가 되어버린 아들을 찾아 묻었답니다.

“매일 내 아들이 생각나/떠나간 뒷모습이 생각나/생각이 많아질 질수록 그리움 더욱 깊어져/도무지 알 수 없는 얼굴로/보고픈 내 아들이 찾아와.”

노래는 이미 한숨이 되고 신음이 되고 마침내 억울하게 새끼를 잃은 어미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되었습니다. 이미 제 손수건은 물걸레가 됐습니다. 객석도 다 같이 울었습니다. 감동이었고 공감이었습니다. 결코 꺼내고 싶지 않은 일을 시로 끄집어내고, 힘겹게 무대에 올라 노래까지 불러준 어머니들에게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공연을 위해 준비한 광주민예총도 큰 일을 해냈습니다.

어머니들에게 ‘5월’은 가슴 속에 한과 분노, 슬픔으로 남은 고유명사입니다. 이 아픔을 잊기 위해,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진실을 드러내고 학살자를 밝히기 위해 거리로 나셨습니다. 엄동설한에도, 비가 내려도, 곤봉과 최루탄으로 공권력이 막아서도 거리로 나서게 한 힘입니다.

광주문화재단이 창립된 이후 10년을 보내는 동안 참 많은 ‘5월’이야기를 했습니다. 광주문화재단 10주년 백서를 살펴보면 재단이 지역 예술계와 힘을 모아 창작한 작품들은 80년 5월을 예술적으로 담아내는 여러 노력으로 가득 차 있답니다. 창립 첫해 선보인 ‘자스민 광주’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작품인 ‘뮤지컬 광주’ 등 대규모 창작 작품들은 모두 5월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두환 사과조차 없이 떠나

하지만 ‘5월 어머니의 노래’를 함께 들으며 재단의 창작에 부족했던 것이 뭔가를 생각합니다. 혹시 우리의 노래가 머리로만 아는 5월이었을까, 혹시 의무감으로만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노래를 멈출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학살 책임자인 전두환은 너무도 당당하게 91세까지 천수를 누리고 죽었습니다. 사죄도 사과도 없었던 그의 자연사가 5월의 끝일 수가 없겠지요. ‘5월 이야기’는 영원히 끝이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만하라고 해도 우리의 노래는 끝날 수 없습니다. 뭔가 부족할 수도 있겠지요. 어머니들, 어르신들의 질책도 받을 수 있겠지요. 그래도 ‘5월’의 노래를 그만 부를 수 없습니다. 억울하게 스러졌으나 다시 살아난 5월, 민주를 지킨 광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아픔과 희망에 힘 보태는 그것이 예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