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닫기
“온 가족이 연좌제 늪…그날의 고통 잊혀지지 않아”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판석씨
계엄군에 43일 간 모진 고문 당해
자녀들도 감시 대상…악몽 시달려
“당시 정신적 피해, 손해배상 해야”

2022년 05월 26일(목) 19:17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가 26일 오전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폭력과 연좌제로 입은 5·18유공자 및 가족피해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김생훈 기자
“80년 5월 당시 가족들에게 고통을 겪게 한 죄책감을 4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씻지 못합니다.”

26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판석 씨(66)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민주화를 위한 투쟁으로 본인이 온갖 수모를 겪었음에도 그 피해가 가족들에게도 전가돼 42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상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1980년 5월 20일, 계엄군에게 붙잡혀 43일 동안 온갖 고문과 구타를 당했고, 출소한 후에도 온갖 후유증은 물론 10년간 계엄군과 경찰들의 감시하에 살아야 했다.

서울을 오가며 ‘민주화추진위원회’ 활동을 했던 그의 집에는 매일같이 전남의 한 경찰서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박판석 씨 어디 갔어요?, 박판석 씨 오면 말해줘요’라며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괴롭혔다.

견디다 못한 그는 1984년 결혼식을 올리고 곧바로 부인과 함께 나주로 거처를 옮겼지만, 형사들의 괴롭힘은 끊이질 않았다.

1984년 8월 박씨가 서울에서 보름 정도 머물 당시 혼자 있던 그의 부인은 전세집 주인과 경찰들의 괴롭힘에 쫓기다시피 이사를 하게 됐다.

이사 간 집은 당시 ‘나주중앙파출소’인근, 골목길 주민들은 모두 경찰관계자였고 중앙파출소에서 한 눈에 보이는 장소였다.

그렇게 박씨 가족은 일거수일투족 경찰에게 감시받으면서 살아가야 했다.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그의 자녀들도 경찰들의 괴롭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일주일에 2~3번씩 하교시간에 맞춰 과자를 주면서 박씨의 행방을 물었고 3년간 지독하게 따라다녔다.

또한 자녀들과도 사이가 멀어졌다. 그가 악몽에 시달리며 갑자기 악을 쓰고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어린 마음에 아빠를 무서워했다.

서른살이 넘은 자녀들은 지금도 아버지와 대화하지 않고 이들이 집에 오는 날, 박씨는 쓸쓸히 방에 들어가 눈물만 흘리며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고 자책만 하고 있다.

이처럼 5·18 피해자들은 물론 가족까지 입은 고통이 수십년째 지속되는 상황에서 상처와 고통으로 쌓인 마음의 벽은 그 어떠한 노력에도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이에 5·18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는 이날 오전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국가배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단체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55.8%가 후유증을 앓고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50명이나 된다”면서 “그 당시 우리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됐고, 그 고립에 대해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이어 “평범한 가정은 일순간에 무너졌고 고통은 어린 자녀를 비롯해 부모·형제 등 모든 가족의 몫이 됐고 경제적 어려움 또한 컸다”며 “국가폭력과 탄압으로 고통받는 민주유공자들과 가족들이 연좌제로 입은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5월 헌법재판소는 과거 5·18 유공자들에게 지급된 보상금은 ‘신체적 손해’만 해당할 뿐 ‘정신적 손해’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기존의 5·18 보상법을 위헌으로 결정한 바 있다.

대법원은 이러한 헌재의 결정을 근거로 ‘5·18 보상법에 따른 지원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5·18 유공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집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홍승현 기자
#2022052601000905600028051#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