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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뮤직 줌 <57> 리스트, 순례의 해 1년

최고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
스위스 대자연 아름다움 음율 표현
마리 다구와 스위스 여행중 작곡
사랑한 여인과 행복한 순간 담겨
200년전 리스트가 느낀 감동 속으로

2022년 08월 04일(목) 17:15
프란츠 리스트 초상화
프란츠 리스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평가받는다. ‘음악으로 쓴 여행기 순례의 해(Annees de Pelerinage)’는 리스트의 작곡기법이 총 망라된 예술 결정체다. 리스트가 작곡한 피아노 솔로 작품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기도 하다. 작품 전체를 완성시키는 데 40년이 걸린 만큼 리스트는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음악어법의 발전을 담아냈다.

‘순례의 해’는 ‘첫 번째 해, 스위스’(Premiere annee, Swiss), ‘두 번째 해, 이탈리아’(Deuxieme annee, Italie), ‘세 번째 해는 다른 해와 다르게 국가명이 달려있지 않지만 이탈리아 여행 감상이 주를 이룬다. 이중 마리 다구 부인과 스위스 여행 중 완성된 순례의 1년은 대자연 앞에서 한 인간의 작은 내면을 보여준다.



◇음악적 가치

이 작품이 리스트의 어떤 작품보다도 높이 평가받고, 음악사적으로 의미가 있는지는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한 그의 업적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세 권은 1830년대부터 시기를 두고 1877년까지 리스트가 작곡가로 보낸 삶의 대부분인 반세기에 걸쳐 작곡됐다. 이 작품은 특히 리스트의 낭만적이고, 시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기교적인 내용과 음악적 깊이까지 다양한 그의 음악적 역량을 엿볼 수 있다. 특별히 이 작품은 인상파 음악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작품의 표제가 갖는 음악적 상상력과 시적인 요소는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아실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의 영상 모음곡과 두 권의 전주곡집만 봐도 알 수 있다. 모두 26곡 구성의 세 권의 작품집은 연주 시간만 150분 정도 소요돼 낭만주의 시대 피아노 작품 중에서 규모가 큰 작품으로 구분된다. 또한 리스트의 다채로운 음악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스위스 자연풍경


◇마리 다구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마리 다구(Marie d’Agoult)는 프랑스에서 망명 온 귀족인 부친과 프랑크푸르트의 대 은행가인 모친 사이에서 1805년 태어났다. 그녀는 스물두 살에 열다섯 살 위인 샤를 다구 백작(Charles Louis Constant d’Agoult)과 결혼해 두 자녀를 뒀으나 나중에 별거하고, 센 강변의 대저택에 살롱을 차리면서 예술가들과 교류를시작했다. 리스트와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의 만남은 1832년 리스트가 스물한 살, 백작 부인은 스물일곱 살이었다. 당시 젊은 피아니스트로 파리를 중심으로 주목받았던 그가 프로방스 거리로 거처를 옮기면서 사교계의 중심으로 들어간 것은 그의 삶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 됐다.

그들의 만남을 마리 다구 부인은 아래와 같이 회상했다. ‘문이 열렸을 때 어떤 환영(apparition)이 눈앞에 펼쳐졌다. 환영이라는 말 외에는 이렇게 강렬한 경탄을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피아노와 예술뿐만 아니라 문학, 종교, 정치까지 폭 넓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이들의 관계는 파리 사교계를 흔드는 중요한 스캔들이 됐다. 당시 이혼이 허용되지 않던 시대에 백작 부인이 신분이 낮은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며 ‘사랑의 도피’를 결정했다.



헝가리 리스트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리스트가 생전에 사용하던 피아노.
◇순례의 해 1년

이 곡의 표제인 ‘순례’는 일종의 밀월여행이었다. 남편과 두 아이가 있던 마리 다구는 1835년 5월 리스트와 시차를 두고, 파리를 떠나 스위스 바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콘스탄츠, 발렌슈타트 호수 등 스위스의 대자연을 무대로 인상적인 작품을 구상했다. 이 모음곡의 첫 번째 곡인 ‘윌리엄 텔 성당(Chapelle de Guillaume Tell)’은 리스트의 작품 가운데 보기 드문 단순함과 영웅적인 서사를 들려주고 있다. 14세기 스위스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윌리엄 텔은 전설적인 영웅으로 그를 모시고 있는 예배당에 참배한 음유시인의 감정이 여운 있는 화음의 진행으로 묵직하고 담담하게 펼쳐진다. 이는 마치 초자연 앞에서 작은 한 인간의 노래로 표현됐다.

헝가리 리스트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리스트가 생전에 사용하던 피아노.
순례의 해 1년은 상당히 전원적이고 목가적이다. 리스트가 이 곡집에 열거한 ‘발렌시타트 호수’, ‘전원곡’, ‘샘가’, ‘폭풍’, ‘오베르만의 골짜기’, ‘목가’, ‘제네바의 종’ 등과 같은 제목만 봐도 리스트가 얼마나 스위스 여행에서 목가적이고 자연을 예찬했는지 알 수 있다.

아무리 무뚝뚝하고, 무미건조한 사람일지라도 스위스의 자연 앞에서는 시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리스트가 가장 행복한 순간, 그가 사랑한 여인과 함께 그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그곳은 순례의 해 1년으로 완성됐다. 이 작품을 감상하면 마치 리스트 여행 가이드가 되어 스위스 대자연으로 안내해 준다. 200년 전, 스위스의 자연은 리스트에게 어떤 감동을 전달했을지, 그리고 당시의 영감은 이들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가져왔을지 잠시 상상해 본다.

이 곡만큼 분명하게 스위스 자연을 소개하고, 시적인 정서를 표현한 작품은 없을 것이다. 지금 이순간 스위스로 떠날 수 없는 독자들에게 리스트 순례의 해 1년 청취를 권해본다. 잠시 후 리스트가 다녀간 길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마리 다구 백작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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