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붓자 찻잔에서 맨드라미꽃이 붉게 핀다. 저 붉음은 최선을 다해 붉어지고 독해져야만 뜨거운 여름을 건널 수 있다는 뜻일까. 붉다 못해 독해지는 것이 삶의 수단이었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위협적인 열정 같기도 하고 치명적인 독 같기도 한 맨드라미가 물을 머금자, 닭의 볏처럼 꽃잎을 활짝 연다. 퇴로가 없는 싸움에서 생을 낭떠러지로 몰아세우는 닭의 볏 같은 꽃의 살점들. 그날의 기억을 가로지르며 찻잔 속에서 피어나고 있다.

그날은 시장에서 장 볼 게 있어 아침 일찍 차를 몰고 나왔다. 동네 골목에서 비보호 구역인 큰 도로를 건너야 시장으로 들어설 수 있기에 잠시 대기 중에 있었다. 그런데 대형 트럭이 내 바로 뒤에서 연이어 빵빵댔다. 큰 도로에는 달리는 차들이 많아 건널 수 없는데도, 빨리 도로를 건너라고 재촉했다. 쉴 새 없이 클락션을 빵빵대는 바람에 화가 잔뜩 치밀었다. 머리카락이 닭의 볏처럼 빳빳하게 섰다. 깃털을 부풀려 세우고 덤벼드는 수탉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벌겋게 충혈된 아침이 와장창 깨지듯 저주의 말들을 쏟아냈다. 악에 받친 분노는 제 종족을 퍼뜨리듯 쌍시옷의 욕설을 내뱉었다.

핏발 선 눈빛을 간신히 멱살잡이해 큰 도로를 건너 시장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런데도 그 대형 트럭은 시장 골목까지 따라오면서 여전히 클락션을 빵빵거렸다. 인내가 바닥난 나는 순간 브레이크를 확 밟아 버렸다. 트럭도 놀라 끼이익 급정거를 했다. 내 차와 트럭의 간격은 불과 5cm였다. 화를 추스리며 숨고르기 한다는 것은 한 됫박의 모래알을 씹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내 피는 뜨겁다 못해 보타져 사나운 쌈닭이 되어 갔다. 태국의 민속놀이 중에는 닭싸움이 있다. 발목에 칼을 찬 쌈닭이 목 주변의 털을 꼿꼿하게 세워 상대의 기선을 제압한 뒤, 빈틈이 보이면 부리와 발톱으로 공격한다. 나는 칼을 휘두르는 그 쌈닭처럼 2미터 높이에 앉아 있는 대형 트럭 운전수를 향해 쌍욕을 퍼부었다.

“이 00놈아, 나더러 큰 도로 건너다 죽으란 말이냐? 이 0같은 놈아.”

날카로운 부리로 물어뜯듯 살점이 뜯긴 아침을 인정사정없이 후려쳤다. 내 혀에서 튀어나온 자음과 모음은 말의 기원이 욕설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시끄럽게 쏟아졌다. 욕설이 소란스럽게 골목을 점령해 나가자, 시장통 사람들은 제멋대로 자란 시비거리에 움찔하다가 일제히 쳐다보았다.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스스로를 생의 낭떠러지로 몰아세웠다. 그렇게 10여 분간 소란을 피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트럭 운전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 후로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웠던 몇 번의 여름날이 병든 몸뚱이 같은 무더위를 뒤집어쓴 채 욕설과 시비 속에서 헤매다 지나갔다.

맨드라미 꽃차를 마신다. 야성의 피, 그 닭의 볏 같은 꽃잎을 여러 번 덖고 식히기를 반복하며 꽃차는 완성됐을 것이다. 야성의 피가 뜨거워져 꽃잎이 까맣게 타들어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불 조절을 했을 것이다. 발목에 칼을 찬 쌈닭 같은, 그 분노라는 불 조절이 어느 정도 될 때까지는 30년이나 넘게 걸렸다. 오늘따라 맨드라미 꽃차 향이 구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