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카페] 광주전남 최대 피규어 전시장 ‘카페인우’

피부 감촉 살린 피규어부터 한정판 신발까지
약 20억원 상당 전시품‥전국서 관람객 몰려
건강 챙기는 ‘캐모마일자몽에이드’ 인기

글 민슬기 기자 사진 김생훈 기자

우리는 브라운관 속 배트맨과 조커,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등 히어로들이 지켜주는 세계에서 살았다. 그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으면서. 혹은 언젠가 그들의 동료가 될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어느새 훌쩍 자라 어른이 되었고, 세계를 누비며 악당들을 혼내주기엔 머쓱한 나이가 되었다. 지구를 지키기엔 시간도 없다. 대신 추억 속 이들과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겨보는건 어떨까? 지난날 동심을 회상하며 잠시 그때로 돌아가보는 것도 좋다. 전남 담양군 용면에 위치한 ‘카페인우’를 소개한다.

◇ ‘키덜트’란?

키즈(Kids)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인 ‘키덜트’. 어린이를 타켓으로 한 영화나 만화, 게임 등의 캐릭터 장난감에 열광하고 수집하는 성인을 뜻한다. 주로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피규어를 모은다. 실제와 가장 가까운 모습이나 질감으로 재현해낼수록 값과 희소성은 높아진다. 힘들게 구한 피규어는 갖고 놀지 않는다. 리셀가를 노리고 되팔지도 않는다. 피규어는 이미 고급 수집품 영역에 들어섰다. 샤넬 등 유명 명품 매장에서 오픈런을 달리는 이들처럼 한 고급 피규어 제작사의 피규어를 구매하기 위해 발매 당일 8천 여명의 동시접속으로 서버가 다운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해당 피규어의 리셀가가 두 배 이상 뛴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산업 전망 보고서’를 보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지난 2014년 5천억원대에서 2021년 1조6천억원으로 올랐다. 레고, 피규어, 애니메이션 굿즈 수집 등을 포함한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를 향후 최대 11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며 더욱 가파른 성장세를 예고하기도 했다.

◇ ‘키덜트족’의 성지

최근 피규어 수집가들이 전국적으로 몰려드는 곳이 있다. ‘카페인우’다. 하지만 기대감을 한껏 갖고 도착하면 어리둥절하기 십상이다. 외관은 전혀 광주전남 최대 피규어 전시 카페라는 수식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장난기 어린 심볼캐릭터와 ‘난 네가 필요해’라는 뜻의 아이 니드 유(I NEED U) 입간판만 보인다. 실망하기엔 이르다. 이곳은 선물을 꽁꽁 숨긴 상자처럼 비밀을 잔뜩 숨기고 있다.
커피 및 베이커리류를 판매하는 2층은 전형적인 카페의 모습이지만, 1층은 180도 다른 모습이다. 노태영(42)대표가 10년 이상 모은 수집품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카페인우’는 전혀 다른 두 모습을 갖춰 흥미를 유발한다.
방문을 위해 계단을 한층 올라서면 한켠에 나이키 신발이 담긴 상자가 가득 쌓여있는 것이 먼저 보인다. 지난 5월 오픈한 ‘카페인우’는 약 한달간 손님들을 대상으로 신발 추첨 행사를 진행했다. 피규어 전시와 함께 나이키 컬렉션도 전시하고 있기에 정체성을 알리기 위한 시도로 적합했다. 노 대표는 과감한 이벤트에 대해 “수집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계기도 있었다. 그가 수집하는 물건은 피규어와 신발인데, 한정품인 경우가 많아 서울과 경기, 부산 등 인구가 많은 대도시로 갈 때가 많다. 한번은 바쁘게 구매하러 가는 길에 어린 친구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무심코 지나쳤는데, 한참 뒤 귀갓길에도 여전히 길게 늘어서 있어 물어보니 신발 하나를 보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해당 제품은 노 대표가 이미 소유하고 있었던 제품이었다. 당시의 경험으로 획기적인 이벤트를 계획하게 된 덕분에 ‘카페인우’의 손님들은 나이키와 아디다스 신발을 받아갔다.
특이한 점은 여러 켤레의 신발을 구매하고 있지만 노 대표는 발에 익숙한 한 켤레의 신발만 고집한다는 점이다. 힘들게 구한 피규어를 갖고 놀지도, 구한 신발은 랩핑해 귀하게 모셔놓고 되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테크의 명목이나 과시용으로 수집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신발은 리셀가가 큰 폭에 속하지만 피규어는 10개를 사면 9개는 가격이 떨어지는 레드오션이다. 단순히 자기만족형 소비다. 등락가가 큰 피규어의 매력에 대해 묻는 말에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해당 캐릭터를 보면 장면이 떠올라 좋다”고 설명했다. 이어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하나만 있을 수는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고 웃었다. 현재 매장에 전시된 제품은 3분의 1 가량 밖에 되지 않는 정도다.

◇ 영화 ‘반지의 제왕’ 특수효과팀이 제작한 피규어까지

1층으로 내려가면 절로 감탄이 쏟아진다. 전세계적으로도 수집가가 많은 나이키 신발이 우측 벽면 가득 컬렉션으로 즐비해있다. 노동력과 시간, 애정에 비하면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구매 당시 값으로 계산해봐도 약 10억 원에 이른다. 리셀가가 더 높은 낫포리셀, 스캇 프라그먼트 조던, 슈프림 덩크 등도 볼 수 있다. 전시해둔 공간에서 가장 비싼 신발은 디올과 콜라보한 에어디올 한정판이다.
좌측은 1대1 실물크기의 헐크가 자리잡고 있다. 압도적이다. ‘계속 크는건가?’, ‘열두시 되면 움직이나봐’ 하는 관람객의 귀여운 대화가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마니아들이 아닌 일반인들도 잘 아는 드래곤볼부터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 DC코믹스 캐릭터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등 마블코믹스 캐릭터가 즐비해있다. 다양하게 콜라보된 베어그릭스도 있다. 반지의 제왕 특수효과팀이 제작한 피규어들까지 전시 돼 있다.
장난감 같지 않고 사실적인 디테일에 감상하다 깜짝 놀라기 일쑤다. 실제 사람의 피부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실리콘을 사용하고, 정교한 눈빛을 위해 눈알을 유리를 사용해 넣는 등 기술의 우수성, 예술적 표현의 실현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장소다.
영화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가장 고유한 특징을 잘 잡아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장면과 포즈를 주의 깊게 보는 것도 재미다. 실제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정교함이 인상적인 스태츄 피규어(받침대 등에 고정돼 모양을 바꿀 수 없는 완성형 제품)은 트럭 째 운반해야하기에 보통 일이 아니다. 이곳에 있는 피규어의 값어치만 약 20억에 이른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도난과 파손 위험에 의해 유리벽 보관을 할 법한데 전부 오픈해 두었다는 점이다.
노 대표는 “아무리 깨끗이 닦는다하더라도 유리벽 너머 보는 것과 실제 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며 “일부러 관람하러 와 주신 분들에게 관람의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눈으로만 관람해달라고 안내하고 있지만 협조는 잘 되지 않는다”며 웃었다.

◇ 인터넷으로 동반인 구해 방문하기도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상주해 있지 않으니 사고는 생기기 마련이다. 어느 날, 한 남성손님이 사색이 돼 노 대표를 찾았다. 만지지 말라는 경고에도 메두사 피규어 머리에 손을 대 혀가 똑 떨어진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범인은 그 손님의 아들이었다. 피규어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손님이었기에 거듭 사과하기 일쑤였다. 노 대표는 아이라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며 다독이곤 놀란 아이를 위해 인기 만화 영화 피규어까지 선물했다. 그는 “최근에는 수백, 수천만원의 고가 상품이라는 인식이 생겨 스스로 조심해주신다”고 설명했다.
전세계 희귀 피규어들이 모인 곳이다보니 에피소드도 남다르게 벌어진다. 인증샷을 찍고 싶은데 혼자 가면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으니 인터넷에서 함께 갈 동반자를 구인해 방문하는 손님도 있다.

◇ 누구나 이름 들으면 알만한 카페 목표

광주전남 최대 피규어 전시장을 표방하며 전시에 신경쓰고 있지만 음료와 베이커리 또한 단골이 생길 정도로 인기다. 시그니처 메뉴는 땅콩크림라떼와 캐모마일자몽에이드, 에그타르트다. 땅콩크림라떼는 묵직하고 쫀쫀한 땅콩크림이 가미됐다. 고소한 라떼에 땅콩의 맛이 더해져 두가지맛을 즐길 수 있다. 달지 않고 고소한 맛이 인상적이다. 캐모마일자몽에이드는 마치 논알콜칵테일같은 맛이다. 따뜻한 성질을 가진 자몽과 캐모마일을 여름에 맞춰 아이스 음료로 바꿨다. 청량감이 나고 단맛이 적절하게 조화돼 입안이 깔끔하게 마무리 된다.
포르투칼식 에그타르트는 자주 품절되는 디저트로 2030세대들의 필수 디저트다. 겹겹이 쌓인 파이는 겉은 파삭해 입과 귀를 자극하고 안은 달달한 커스터드크림이 씹혀 부드럽게 마무리 된다.
‘카페인우’로 전시와 카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커피를 마시지 못했던 노 대표는 이제 아침마다 커피를 마신다. 예민한 혀로 로스팅 된 원두와 추출된 커피의 맛을 평가할 줄 아는 커피 매니아도 되었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카페를 지향하는 것이다. ‘카페인우’에서 영원히 늙지 않는 나만의 히어로들과 당신을 기다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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