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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김순옥 광주시 여성가족교육국장

2022년 10월 13일(목) 18:25
김순옥 광주시 여성가족교육국장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안전한 이별’이 화두라 한다. 교제하던 상대방에게 이별을 통보하기 전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안전하게 이별하는 법’을 검색해야 할 만큼 연인과의 이별에 위협을 느낀다는 것이다.

신당역 역무원 살해사건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대구에서 여동창생을 중퇴에 빠뜨린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미혼의 두 딸을 둔 엄마이자, 우리시의 여성안전을 담당하는 공직자로서 필자가 느끼는 책임감과 무게감은 남다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토킹 처벌법이 작년 10월에 시행되었다는 것이다.

1999년 처음 발의된 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늘 임기 만료로 폐기돼 오다 22년 만에야 겨우 국회를 통과했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얼마나 가볍게 치부해 왔는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과거 우리사회에서 남녀 간에 발생한 문제는 모두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다.

‘보쌈’이라는 언어로 여성의 납치가 정당화되고, 맘에 드는 여성을 강제로 ‘내 여자’로 만드는 일이 남성에게는 자랑스런 무용담이기도 했다. 반면, 여성은 ‘처신을 어떻게 했길래...’라는 비난을 감당해야 했고, 이런 비난을 피하기 위해 쉬쉬하거나 사랑 없는 결혼을 해야만 했다.



달라지고 있는 인식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여권이 신장 되면서 여성도 당당하게 이별을 고하고, 사귀다 헤어지는 것도, 결혼해서 이혼하는 것도 그리 흉이 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전환기다. 아버지가 누렸던 권위를 보고 자라 가부장적 인식이 남아있는 남성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낯설고 싫다.

이번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두고‘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폭력적 대응을 한 것 같다’라는 모 국회의원의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문제는 아직도 스토킹을‘범죄’가 아닌 ‘사랑’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토킹은 사랑도, 용기도, 로맨스도 아니다. 집착이고 망상이고 범죄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서도 스토킹 처벌법의‘반의사불벌죄’규정을 폐지하고, 가해자에 대한 전자발찌 등 위치추적 장치 부착과 구속영장 적극 청구, 접근금지와 휴대전화 연락 등 통신 금지, 구치소 구금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않으면 가해자를 기소할 수 없는 제도이다. 이 조항 때문에 신당역 가해자도 지속적으로 합의를 종용하며 스토킹을 이어갔고, 대구 동창생 사건도 보복이 두려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 가해자를 입건하지 못해 일어났다.



피해자 보호 방안 시급

우리시의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8월말 현재 414건으로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기 전인 작년 8월말(143건)에 비해 대폭 증가(189%)했다.

우리시는 이러한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올해 9월 ‘스토킹범죄 예방 및 피해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한편 ‘스토킹 실태조사 및 지원정책 방안’연구를 의뢰하였다. 지난 9월 22일에는 스토킹 범죄 대응을 위한 관계자 긴급 회의를 개최하고 피해 예방과 피해자 지원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10월에는 자치경찰위원회에서 구체적인 협업체계 구축 방안을 논의하고 피해자 보호 및 지원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러나, 법과 체계가 아무리 잘 짜여져 있더라도 스토킹 범죄로 인한 후유증은 매우 심각하다. 스토킹의 특성상 본인의 개인정보뿐 아니라 가족까지 상대방에게 노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해자가 구속되더라도 2차 보복이 두려워 평생 불안에 떨어야 한다. 피해자들의 가장 큰 바람인‘안전한 일상으로의 복귀’가 쉽지 않음이다.

때문에 스토킹 범죄는 애초에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숙하게 이별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수십 년간 함께 살다 이혼한 부부도 좋은 친구로 잘 지내지 않은가. 소설가 김형경은 자신의 책‘좋은 이별’에서 “우리에게 잘 이별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을 비롯해 세상 모든 관계는 이별이 필연적이다. 이 불가항력적인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삶은 현저히 달라진다.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며 세련되고 쿨하게 돌아서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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