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기의 건강백세] 겨울연가

글 안수기 그린요양병원장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한천落木寒天 찬 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려 은세계가 되고 보면/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하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무정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이 내 청춘도 아차 한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은 어려워라- 판소리 <사철가>중 일부분

서리가 내렸으니(상강霜降), 바야흐로 겨울이다(입동立冬). 날이 차가워진(세한歲寒)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 추사 김정희는 한 폭의 그림과 글귀로 <세한도歲寒圖>에 표현한 바 있다. 그렇다. 차가워지면 삼라만상은 냉정해진다. 아니 냉혹해진다. 어려움을 당해봐야 세상의 인심과 의리도 드러난다. 인체도 예외가 아니다. 추위에 노출된 신체는 정직하다. 아픈 부위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겨울의 몸은 힘들다. 소통하지 않는 곳에 통증이 있고不通則痛, 소통하면 통증이 없다通則不痛. 통증에 대한 원칙이다. 한의학적 이론 중에 가장 근간이 되는 대목이다. 인체의 모든 통증과 염증은 대부분이 혈액의 순환 부족이 원인이 된다. 한방에서는 이를 기혈순환의 부족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어디 인체의 통증뿐이랴! 사회나 경제도 소통과 순환이 관건이다.

순환에는 많은 변수가 있다. 심장의 건강상태는 기본이다. 혈관이나 장기의 상태뿐만이 아니다. 나이 환경 심리적인 이유로도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한편 외부적인 기후나 온도 등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이다. 차가우면 심장박동도 당연히 느려진다. 혈관도 더욱 더 수축시킨다. 순환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온도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흥미로운 것은 감각 반응은 각각 개인별로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차가움을 극한으로 느낀다면 어떤 이는 잘 견디어 내는 것이다. 이는 신체의 건강상태나 체질에 따른 차이로 이해한다. 그러나 임상에서는 실제로는 냉증을 잘 느끼는 사람이 몸도 부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가움에 대한 반응을 냉증冷症이라 한다. 특정부위에 찬 기운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등이나 두피 등 전신에서 모두 느낄 수 있다. 특히 손과 발에서 느끼는 수족냉증(手足冷症)이 대표적이다. 간혹 여성들 중에 아랫배가 차갑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연관되어 생식기 질환이나 불임의 증상들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한의학적 치료로 아랫배가 따뜻해 진 후에 관련 증상이 호전되고 몸이 좋아졌다는 임상사례는 넘쳐난다.

시골에서 퇴비를 쌓아놓은 두엄에서 김이 오르는 것을 기억하는가? 미생물이 섬유질이나 음식물을 분해할 때 발생하는 열이다. 일명 ‘미생물의 분해열’이라 한다. 냉증에 대한 이해에서 놓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대장에 기생하는 타자들, 즉 미생물들이다. 장내의 미생물들이 음식을 분해할 때 열이 발생한다. 이러한 분해열이 장을 데우고 장 근처를 지나는 혈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혈액과 전신이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이 튼튼하면 몸이 전체적으로 따뜻하다. 반대라면 당연이 몸은 차갑고, 찬 기운에 민감해질 수 있다. 장내 미생물이 내 몸의 화로불인 것이다.

자연에서의 겨울은 삼라만상이 움츠린다. 활동을 최소화하면서 신진대사의 낭비를 없앤다. 이는 인간에게도 적용할 교훈이다. 야간활동을 줄이고 수면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최대한 불필요한 활동을 자제하고 단순한 생활리듬을 권한다. 햇살 앞으로 나아가자. 조상들은 부족한 부분은 채웠다. 겨울철에 보약을 복용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까운 한의원을 방문해보자. 의외의 결과에 놀랄 것이다. 보약이 갑자기 생각나시는가? 그렇담 이 글은 반은 성공했다. 직업은 못 속인다.

세한의 계절이다. 이런 때일수록 건강이 재산이다. 체온관리를 잘하자. 이왕이면 순환이 잘되게 하자. 목간 목욕 후에 따스한 차 한 잔을 권한다. 일상의 건강습관으로 간직함도 좋겠다. 모두가 소통과 순환이 잘되는 겨울을 기대한다. 더불어 봄처녀를 그리워해보자, 겨울 삭풍 속에서도.

·한의학박사 ·그린요양병원 대표원장 ·다린탕전원 대표 ·국무총리상 수상 ·원광한의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