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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이팝나무꽃 진자리에
2023년 05월 15일(월) 15:50
<화요세평>이팝나무꽃 진자리에
김명화 교육학 박사·작가


밀양에 있는 위양지에 자동차로 3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5월 6일이 입하(立夏)여서인지 비바람이 몰아친다. 가뭄에 내린 비가 고맙지만 반갑지만은 않다. 이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핀 위양지를 보고 싶어 왔는데 비바람이 먼저 우릴 반겼다.

위양지는 몇 년 전부터 찾고 싶은 곳이었다. 몇 년 전부터 SNS에 올라온 위양지의 아름다운 장면 때문이었다. 밀양은 처음 방문하는 곳이다. 경남 청양에서 밀양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산은 높고 계곡도 깊다. 비바람 불어도 이팝나무꽃이 피어 있길 기도해 본다.

비바람이 부는 날이라도 차를 몰고 위양지에 간 이유는 이팝나무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팝나무는 물푸레 나무과에 속하며 꽃이 밥알을 닮았다고 하여 이팝나무로 불린다. 푸른 나무에 하얀 꽃이 피면 밥알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처럼 보인다. 이팝나무가 꽃이 필 무렵은 보릿고개가 있다. 보리가 필 무렵이면 양식은 떨어지고 보리가 누렇게 익을 때까지 주린 배를 잡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 시기에 하얀 이팝나무 꽃은 쌀밥으로 보였을 것이다.

광주선 5·18 민주화 이미지

이팝나무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위양지에 이팝나무꽃은 쌀 나무로 보이지만, 광주의 이팝나무는 5·18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세월이 흘러도 광주 시민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그 날의 이야기는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1980년부터 43년의 세월이 지나도 5·18이 되면 예쁜 옷을 입으면 안 될 것 같고, 좋은 일이 있어도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그날을 기억한다. 이팝나무는 5·18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어 광주 시민들은 이팝나무꽃이 피면 가슴으로 묵념을 한다. 43년이 지났지만, 가슴에 아린 상처를 안고 우리는 그날을 기억한다. 같은 이팝나무 꽃을 보고 지역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밀양에서는 이팝나무꽃 만개한 위양지에서 ‘밀양 요가 행사’를 진행했다. 위양지에 있는 완재정과 연결된 다리 위에서 펼쳐지는 요가 모습이 물에 비추어져 자연과 하나가 된 인간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밀양의 이팝나무는 인간과 자연과 어우러진 현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광주 5·18 국립묘지 가는 길에 이팝나무는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는 나무로 각인되고 있다. 이팝나무는 광주 시민의 뜨거운 가슴에 꽃씨가 되어 싹이 나고 잎이 되어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무성하게 남길 것이다.

광주문화재단에도 5·18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기 릴레이가 진행되고 있다. 광주에 오월이면 울려 퍼지는 노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자 산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의 한 부분이다. 1980년대부터 광주에서 노래는 울려 퍼져 지금까지 광주 시민의 가슴속에서 이어지고 있는 노래다. 1980년대는 광주에서 계속 외치고 부르던 민중가요였으며, 자연스럽게 광주의 역사와 함께 스며든 노래다. 민주화 운동 때 시민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는 지속성을 가지고 민중의 저변에 깔려 있다. 한동안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는 금지곡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의 함성을 잊지 않을 것이며 릴레이는 계속 되어질 것이다.

‘그날’ 기념 시민의 가슴꽃

한편,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이하여 관련 단체들의 방만하고 투명하지 못한 운영에 대해 광주광역시 초선의원들의 자유발언은 의미가 크다. 그중에 “5·18은 누구의 것입니까?” 질문과 함께 답도 제시해 주었다. “5·18민주화운동이 특정인과 일부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것에 대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오월이 되면 하얀 꽃만 보더라도 상처가 돋아나는 가슴 꽃을 간직한 광주 시민 모두가 주인인 것이다.

국립5·18민주묘지 가는 길에 이팝나무가 심어진 시기는 1994년이다. 이전에는 5·18 묘지 가는 길에 가로수가 없었다. 현 5·18 국립묘지를 다시 조성하면서 이팝나무를 심은 것이다. 올해는 5·18 민주화 기념일이 오기도 전에 이팝나무꽃이 지고 있다. 5·18 국립묘지 가는 길 이팝나무꽃 진 자리에 바람만 불고 영혼은 꽃이 되어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이팝나무꽃 진 자리에 광주 시민의 가슴꽃이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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