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매광장>잃어버린 5월의 노래들 |
| 2023년 05월 17일(수) 15:26 |
|
<전매광장>잃어버린 5월의 노래들
곽규호 광주문화재단 경영혁신본부장
지난 11일 광주문화재단에서 열린 렉처콘서트는 작곡가이자 가수, 음반 제작자로 활동해온 박문옥씨를 초청해 노래와 이야기를 듣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의 주제는 ‘광주가 사랑한 오월의 노래’. 기타 하나 들고 80년대 이후 광주와 대한민국 시위 현장에서 불리던 노래와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박문옥씨는 전남대에 다니던 1977년 제1회 MBC대학가요제에 트리오 ‘소리모아’를 결성해 ‘저녁 무렵’이라는 곡으로 동상을 받으면서 광주의 대중음악을 이끌어온 인물입니다. 이후 시골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다시 돌아와 광주의 노래운동에 동참합니다. 수많은 민중가요를 작곡, 편곡, 반주, 녹음하는 역할이었습니다. 1986년에는 광주에 최초의 민간 녹음실인 ‘소리모아 스튜디오’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음반 작업을 펼쳤습니다. 광주의 어지간한 노래패나 민중가요 음반이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광주 민중가요 음반 제작
그런 그가 가장 먼저 불러준 오월 관련 노래는 ‘오월의 노래 2’.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넋)’로 시작하는 노래입니다. 80년대 초반 대학가에서 크게 불리던 이 노래는 원래 프랑스 가수 미셸 폴나레프가 1971년 불렀던 ‘누가 그 할머니를 죽였나’를 번안한 노래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것보다 조금은 느리고 서정적이었던 원곡을 누군가가 4분의 4박자로 빠르게 편곡해 전파했습니다. 무엇보다 80년 광주를 적나라하게 그것도 4-4조로 노래 부르기 딱 좋게 가사를 만들어 광주뿐 아니라 시위 현장이면 어디든 불렸던 곡입니다.
80년 5월 현장에서는 시민들에게 잘 알려진 운동가요가 많진 않았습니다. 제가 가장 많이 들은 노래는 ‘정의가’ 혹은 ‘훌라송’입니다.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길 원한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외치던 대학생들의 노랫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합니다. ‘통일의 노래’, ‘애국가’도 불렀고, 기록을 뒤져 보면 ‘아침이슬’도 많이 불렸다고 합니다.
이후 수많은 민중가요들이 만들어져 보급됩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 ‘광주출전가’ 등은 80년대 초반 광주에서 만들어져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80년 5월 이후 전국의 대학가에는 노래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전남대, 조선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85년에 전남대 ‘횃소리’, 88년 조선대 ‘함성’이 만들어졌고, 광주교육대에도 ‘에루얼싸’가 결성돼 노래운동을 펼쳤습니다.
광주에 수많은 노래패와 노래꾼들이 있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전국적으로 가장 앞선 시도, 아름다운 선율로 대한민국 민중가요를 이끌기도 했다는 게 이날 박문옥씨의 주장입니다. 특히 ‘님을 위한 행진곡’과 더불어 훗날 불가에 출가해 승려 범능으로 활동한 정세현씨의 ‘광주출전가’ , 박종화씨의 ‘바쳐야 한다’ ‘파랑새’ ‘지리산2’ 같은 노래들은 운동권에서 크게 히트한 곡이지요. 특히 ‘꽃등 들어 님 오시면’ ‘봄날의 코스모스’ (정세현 곡), ‘직녀에게’, ‘목련이 진들’(박문옥 곡) 같은 노래들은 뛰어난 예술성으로 민중가요의 수준을 높이 끌어올린 작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 많은 노래들을 다 열거할 순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이런 노래들이 불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화 이후 노래의 사명도 수명도 다한 것일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 노래들의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래를 만들고 불렀던 이들의 열망과 열정은 여전히 소중합니다.
카세트테이프·악보 찾아야
매년 5월 민주광장에서 열리는 ‘오월(거리)음악회’, 2010년 시작된 ‘5월 창작가요제’가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지난 2020년 광주 청년 음악인들이 만든 ‘나는 80년 이후 생이다’ 같은 시도도 빛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런 창조적 계승이 다양하게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2006년 발간된 ‘민주장정100년 광주전남지역사회운동사’에 당시의 가수와 노래패, 단체, 노래 제목 등이 정리되기는 했지만 테이프(음반)와 악보, 음원들은 찾아보기 어렵지요. 어디 한 곳에 모아 놓고 그 노래들을 만들고 불렀던 치열한 정신을 이어가는 일도 펼쳐져야 할텐데 말입니다. 1980~90년대 카세트테이프로 만들어지고 배포됐던 노래들, 테이프와 악보들을 찾아내 역사 자료로 남기는 일이 그래서 중요해집니다. 그래야 먼 훗날 세월이 흘러서라도 우리 후손들이 다시 그 노래들을 함께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곽규호 광주문화재단 경영혁신본부장
지난 11일 광주문화재단에서 열린 렉처콘서트는 작곡가이자 가수, 음반 제작자로 활동해온 박문옥씨를 초청해 노래와 이야기를 듣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의 주제는 ‘광주가 사랑한 오월의 노래’. 기타 하나 들고 80년대 이후 광주와 대한민국 시위 현장에서 불리던 노래와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박문옥씨는 전남대에 다니던 1977년 제1회 MBC대학가요제에 트리오 ‘소리모아’를 결성해 ‘저녁 무렵’이라는 곡으로 동상을 받으면서 광주의 대중음악을 이끌어온 인물입니다. 이후 시골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다시 돌아와 광주의 노래운동에 동참합니다. 수많은 민중가요를 작곡, 편곡, 반주, 녹음하는 역할이었습니다. 1986년에는 광주에 최초의 민간 녹음실인 ‘소리모아 스튜디오’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음반 작업을 펼쳤습니다. 광주의 어지간한 노래패나 민중가요 음반이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광주 민중가요 음반 제작
그런 그가 가장 먼저 불러준 오월 관련 노래는 ‘오월의 노래 2’.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넋)’로 시작하는 노래입니다. 80년대 초반 대학가에서 크게 불리던 이 노래는 원래 프랑스 가수 미셸 폴나레프가 1971년 불렀던 ‘누가 그 할머니를 죽였나’를 번안한 노래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것보다 조금은 느리고 서정적이었던 원곡을 누군가가 4분의 4박자로 빠르게 편곡해 전파했습니다. 무엇보다 80년 광주를 적나라하게 그것도 4-4조로 노래 부르기 딱 좋게 가사를 만들어 광주뿐 아니라 시위 현장이면 어디든 불렸던 곡입니다.
80년 5월 현장에서는 시민들에게 잘 알려진 운동가요가 많진 않았습니다. 제가 가장 많이 들은 노래는 ‘정의가’ 혹은 ‘훌라송’입니다.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길 원한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외치던 대학생들의 노랫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합니다. ‘통일의 노래’, ‘애국가’도 불렀고, 기록을 뒤져 보면 ‘아침이슬’도 많이 불렸다고 합니다.
이후 수많은 민중가요들이 만들어져 보급됩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 ‘광주출전가’ 등은 80년대 초반 광주에서 만들어져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80년 5월 이후 전국의 대학가에는 노래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전남대, 조선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85년에 전남대 ‘횃소리’, 88년 조선대 ‘함성’이 만들어졌고, 광주교육대에도 ‘에루얼싸’가 결성돼 노래운동을 펼쳤습니다.
광주에 수많은 노래패와 노래꾼들이 있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전국적으로 가장 앞선 시도, 아름다운 선율로 대한민국 민중가요를 이끌기도 했다는 게 이날 박문옥씨의 주장입니다. 특히 ‘님을 위한 행진곡’과 더불어 훗날 불가에 출가해 승려 범능으로 활동한 정세현씨의 ‘광주출전가’ , 박종화씨의 ‘바쳐야 한다’ ‘파랑새’ ‘지리산2’ 같은 노래들은 운동권에서 크게 히트한 곡이지요. 특히 ‘꽃등 들어 님 오시면’ ‘봄날의 코스모스’ (정세현 곡), ‘직녀에게’, ‘목련이 진들’(박문옥 곡) 같은 노래들은 뛰어난 예술성으로 민중가요의 수준을 높이 끌어올린 작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 많은 노래들을 다 열거할 순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이런 노래들이 불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화 이후 노래의 사명도 수명도 다한 것일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 노래들의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래를 만들고 불렀던 이들의 열망과 열정은 여전히 소중합니다.
카세트테이프·악보 찾아야
매년 5월 민주광장에서 열리는 ‘오월(거리)음악회’, 2010년 시작된 ‘5월 창작가요제’가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지난 2020년 광주 청년 음악인들이 만든 ‘나는 80년 이후 생이다’ 같은 시도도 빛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런 창조적 계승이 다양하게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2006년 발간된 ‘민주장정100년 광주전남지역사회운동사’에 당시의 가수와 노래패, 단체, 노래 제목 등이 정리되기는 했지만 테이프(음반)와 악보, 음원들은 찾아보기 어렵지요. 어디 한 곳에 모아 놓고 그 노래들을 만들고 불렀던 치열한 정신을 이어가는 일도 펼쳐져야 할텐데 말입니다. 1980~90년대 카세트테이프로 만들어지고 배포됐던 노래들, 테이프와 악보들을 찾아내 역사 자료로 남기는 일이 그래서 중요해집니다. 그래야 먼 훗날 세월이 흘러서라도 우리 후손들이 다시 그 노래들을 함께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등록일 : 2015년 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