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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섬이 남긴 유산들

이재근 신안군 학예연구사

2023년 10월 31일(화) 18:58
대한민국 바다와 섬의 역사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인물은 장보고, 이순신, 이사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외에 섬이나 바다와 관련된 역사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우리는 육지와 중앙 중심의 사고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바다와 섬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섬과 바다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섬의 3분의 1이 모여있는 신안군의 섬들을 둘러보면 바다를 개척하고 터전으로 살아왔던 섬사람들의 오랜 흔적들이 잘 남아있다. 패총, 고인돌, 산성, 고분 등의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설화와 노래, 민속신앙 등 무형유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문명이 발생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바다로, 섬으로 나아갔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압해도에서 발견됐으며,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대표 유적인 패총과 고인돌이 안좌도, 장산도 등 육지와 가까운 섬뿐만 아니라 먼바다의 흑산도, 가거도까지 분포되어 있다.

신안의 섬들은 고대 시대부터 해외로 진출하는 교두보였다. 한반도 최서남단의 가거도는 서울과 420㎞ 떨어져 있으나, 일본 오키나와와 355㎞, 중국 저장성과는 390㎞ 거리에 있다. 우리 국경의 끝자락이며 시작점이었고, 바다를 통해 교역과 문화가 전달되는 길목에 있던 가거도에는 신석기시대에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유적인 가거도 패총과 가거도 근해에서 서식하던 멸치 떼를 잡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노동요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가 무형유산으로 남아있다.

마한과 백제로 이어지는 고대 국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신안의 섬들은 영역의 경계로서 대외 교류를 위한 중요한 거점지였다. 압해도, 장산도, 흑산도 등 주요 섬을 중심으로 군현이 세워졌고, 바닷길을 통제하기 위한 산성들도 축조됐다. 압해도의 송공산성, 장산도의 대성산성, 비금도의 성치산성, 흑산도의 상라산성 등이 그 예이다. 또한 정치세력의 수장이 묻혔을 고분들도 여럿 발견됐다. 그중 안좌도 배널리 고분처럼 가야, 왜 등과 친밀한 관계에 있던 해양세력의 수장이 묻히는 사례도 확인됐다.

특히 신라 말기부터 고려 중기까지 활발했던 한반도의 대외교역사에서 거점항구 역할을 했던 흑산도에는 해상왕 장보고의 해양활동 과정에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심사지와 상라산성, 제사터, 관사터 등 다양한 교역 흔적들이 남아있다.

바람이 많은 섬 지역의 특징이 잘 남겨진 돌담과 우실은 조선 후기에 다시 섬을 찾아 입도한 현 주민들의 선조가 남긴 삶의 지혜라 할 수 있다. 산업화, 도시화로 육지에서 돌담이 사라지는 추세이지만, 섬은 아직도 원형을 잘 간직한 돌담이 가거도, 우이도, 도초도 고란리 등지에 남아있다.

이처럼 바다와 섬, 사람들의 유산은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있고, 이를 보전하고 복원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그 가치와 의미를 활용하기 위해 신안군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불교계와 함께 흑산도의 무심사지에 대한 학술발굴과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돌담과 전통민가에 대한 등록문화재 등록 추진, 섬마을의 당집 및 당산림, 우실 등의 문화유산을 지역의 미래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육지에서는 찾기 어려운 문화 다양성, 끈끈한 공동체 문화와 정신이 남아있는 섬은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의 모델이 되고 있다. ‘낙후되고 소외되어 불편한 곳이 섬’이라는 육지 중심의 선입관을 버리고, 섬의 관점으로 섬의 유산들을 보게 될 때 그 유산들은 빛을 더욱 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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