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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당하지 않는 교실은 언제쯤?

장옥순 작가

2024년 03월 12일(화) 17:35
지금 우리는 엄청난 문명의 혜택으로 다양한 정보와 편리한 도구를 이용하여 지난 세상의 어떤 인류보다 쾌적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오히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와 앞서가는 생각의 틀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사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반대로 느림의 철학을 그리워하며 멈춰 서서 바라보기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세상 속에 물들어 사는 것이 힘들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학교도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 다양한 정보기기를 활용하여 교실 환경을 개선하고 교사의 잡무를 줄여 수업 개선에 힘쓰게 하는 정책을 펼쳐온 게 사실이다. 갈수록 스마트해지는 교실 환경과 학교 시설에도 불구하고 가장 근본적인 물음 앞에서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것은 열악한 교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망가진 사제 관계, ‘우정’의 가치는 퇴색해 버린 현실이 그것이다. 학교 폭력 문제나 교실 붕괴와 같은 문제는 병든 채 잠재된 무의식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정신적 접근이 급선무다. 우리는 그동안 정신 문명의 발달이 물질을 따라가지 못하는 세상에 물들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학교가 망가지기 전에 가정이 무너지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었다.

집은 있어도 가정이 없는 아이들, 부모는 있어도 대화가 없는 아이들, 본의 아니게 한부모 가정이 되거나 조손 가정이 된 아이들에게 경쟁과 비교의 논리가 난무하는 교실에 들어와 자신을 이기며 상처와 고통을 공부로 승화시키며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가야 한다고 가르친들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자문할 때라고 생각한다.

경제사학자이자 행복경제학자의 창시자로 불리는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는 1946년부터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 등 30여개 국의 행복도를 연구했다. 그 결과 경제적 발전단계와 사회체제와 상관없이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더 큰 행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시점을 두고 분석해봤더니 소득수준이 늘어나도 행복도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 미국의 경우 1971년부터 199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은 83%나 증가했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이전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런 현상을 두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 부르게 됐다.

지금 우리는 눈만 뜨면 가장 먼저 접하는 소식이 ‘경제’ 소식, 잘 사는 화두에 걸려 너도 나도 거기에 물들어 중독된 채 은연 중에 비교 당하고 비교하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교실의 문제는 바로 ‘비교’만으로도 힘든 아이들에게 경쟁까지 시킨다는 점이다.

지난 2012년 학습연구년 주제 해결을 위해 돌아본 북유럽 교실에서 얻은 결론은 바로 ‘비교와 경쟁’을 의도적으로 늦춘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을 이길만한 나이가 될 때까지 서로 비교당하는 시험을 공개적으로 치르지 않으며 수행평가라 하더라도 친구들 앞이 아닌, 교사와 1대 1로 치른다는 사실에 놀랐다.

자신의 성취도를 스스로 평가할 수 있게 절대평가에 익숙한 교실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공부란 즐거운 과정을 거쳐서 이루는 멋진 승부라는 은연중의 교육으로 일찍부터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여 무조건 대학을 가지 않는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선진국의 모습을 보게 됐다.

거기다 대학까지 무료로 진학하며 빈부 격차가 심하지 않으니 서로 비교 당하며 상처 받지 않는 인생을 설계할 수 있고 사교육을 위해 시간과 노력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며 느리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은 바로 ‘이스털린의 역설’이 정치와 교육에 투영된 거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부자도 너무 가난한 사람도 없으며 보편적 복지가 일상이므로 자신에게 충실하며 느리게 살며 인간의 존엄성을 망각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부러웠다. 그것은 북유럽 국가들이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 체제 덕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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