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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도 민주화 거리로…두려웠지만 피가 끓었다"

[오월 그날, 못다한 이야기] ③변형섭 공로자회 조사과장
군사독재 맞서기 위해 시민군 참여
최후 항쟁지 옛 도청 지키다 붙잡혀
상무대 연병장 연행…모진 고문도
“진실 왜곡·처우 개선 바로잡아야”

2024년 05월 22일(수) 21:39
변형섭 전 공로자회 조직과장
“광주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계엄군에 맞선다는 게 두렵긴 했지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물러서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1980년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변형섭 전 5·18 공로자회 조직과장은 계엄군의 만행에 맞서기 위해 학업을 뒤로하고 항쟁에 뛰어들었다.

가정 형편상 충장로에 위치한 ‘보라매 양장점’에서 생업을 이어온 그는 5월 18일 어수선한 분위기 속 가게 문이 닫히자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보살피며 가장의 역할을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새 직장을 구할 틈도 없이 시민들이 군사독재에 맞서 시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 날인 19일부터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

변형섭씨는 “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돌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 무슨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몰랐었다”며 “계엄군에게 폭행당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참을 수 없어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어나자 광주 시내 전체가 울릴 정도의 함성 소리로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시위가 계속될수록 계엄군 진압에 의한 희생자들이 늘어났고, 5월 21일 오후 옛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발포가 시작됐다.

변씨는 “계엄군의 집단 발포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들이 무장에 나서게 됐고, 시민군과 계엄군 간 대치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시민들은 광주 전역을 돌며 민주화를 목놓아 외쳤다”고 설명했다.

5월 26일 오후 5시께 변씨는 동구 금남로1가 YMCA 건물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이던 박남선씨를 만나게 됐고, 인근 단상 위에 서 있던 박씨는 당시 광주의 상황을 설명하고 “도청을 사수해야 한다”며 젊은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변씨는 “계엄군과 대치하는 것은 무서웠지만, 이대로 도망가 희생당하는 시민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어 시민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26일 저녁 YMCA에서 조 편성을 마치고 6조 타격대에 편성된 변씨는 도청 수위실에서 칼빈 총 1자루와 수류탄 1정을 받고 바로 옆 화단에서 근무를 섰다.

27일 새벽 금남로 인근에서 들리는 총소리와 흐릿하게 보이던 계엄군들의 움직임에 도청 입구 화단을 지키던 타격대원들은 결국 후퇴를 결정하게 됐다.

그는 “전일빌딩 인근에서 쉴 틈 없이 총성이 울리고, 어둠 속 총알이 날아가는 빛이 보이면서 시민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며 “후퇴를 하면서 함께 있던 타격대들이 뒤엉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계엄군들의 무자비한 진압에 옛 전남지방경찰청으로 숨어든 시민군들은 결국 계엄군들에게 발각돼 건물 밖으로 끌려나가게 됐다.

변씨는 “바깥 상황이 궁금해 잠시 정찰을 나간 순간 계엄군과 눈이 마주쳤고, 곧바로 진입한 계엄군이 쏜 총에 숨어있던 학생이 맞았다”며 “피를 흘리며 계엄군에 끌려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계엄군에 붙잡힌 그는 개머리판과 대검 등으로 구타를 당해 기절했고, 다음날인 28일 상무대 연병장에서 눈을 뜬 후 그간 활동에 대한 조서작성과 책임자에 대한 추궁을 당하며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다.

그는 “당시 수사관들이 ‘계속해서 북한의 지시를 받은 것이 아니냐’, ‘총을 어디로 몇 발을 쐈냐’는 질문을 하고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거꾸로 매달거나 송곳으로 가슴과 허벅지를 찌르며 고문을 했다”며 “조사를 받는 동안에도 이곳저곳에서 고문을 받으며 울부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변씨는 온갖 고문을 견디며 150여 일간의 수감생활 끝에 3년간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됐다.

그는 “석방된 이후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동안 당했던 고문과 정신적 고통에 아직도 정신과 진료를 꾸준히 받고 있고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힘들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18 민주화운동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시민들이 너무 많다”면서 “5·18 역사의 왜곡된 내용들을 바로잡고 유공자 처우를 개선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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