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김대중 정신계승 글짓기대회 입상작 연재
2011년 01월 20일(목) 00:00

햇볕이 필요한 시대

고등부 대상 목포여고 하은빈

나날이 바람이 차진다. 등교준비를 할 때도 바깥은 어둑하다. 교복을 입으면서 뉴스를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산가족상봉 장면을 보며 가슴이 더워졌었는데, 최근 연평도 사건이 터지면서 TV에는 긴장된 남북상황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찜질방에 우겨넣어진 연평도 주민들의 지친 표정들과 탱크가 즐비한 연평도 해안의 모습도 언뜻언뜻 비친다.
삶의 터전에서 순식간에 군사적 기지로 변해버린 연평도의 풍경 너머에서 서해 바다만 무심한 듯 넘실거린다. 평온해 보인다.
목포 앞바다를 보며 자라온 내게 서해의 풍경은 참 익숙하다.
노벨 평화상을 기념해 집근처 광장에 평화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은지도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노벨상이 뭔지는커녕 김대중 대통령이 목포에서 자란 분이라는 사실도 몰라서 엄마한테 저 사람이 상 받는거하고 집앞 광장 이름 바꾸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어린 나에게 작지만 나름대로 특별했던 사건이 있었다.
어느날 컴퓨터 시간, 김대중 대통령께 메일을 보내는 시간을 가졌다.
누군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수상을 축하드린다, 존경한다, 본받고 싶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었다. 며칠후 친구들에게 하나둘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한나라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답장까지 하나하나 다 써주겠어? 아니 그전에 내걸 읽기는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주위 친구들이 받은 답장을 부러운 눈으로 읽었었다.
2,3일쯤 지나서 내게도 김대중 대통령의 답장이 도착했다.
어린 마음에 뛸 듯이 기뻤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남북관계의 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 그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 등은 나중에 안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 정도 지위의 사람이 초등학생들의 편지에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써주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또 고마웠다.
어쩌면 이런 것이,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내내 꿋꿋이 관철시켜왔던 대북정책 ‘햇볕정책’의 핵심적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비단 북한의 마음만 돌린 것이 아니라 남한 국민들의 생각도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정상회담을 가진 것이 햇볕정책의 외면적인 성과라면, 대부분의 남한 국민들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인식을 ‘적’에서 ‘형제’로 돌리게끔 하는 장기적이고 내면적인 결실 또한 이루었다.
이러한 결실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햇볕정책의 근본적 접근방식 자체가 대통령의 권위에 기댄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적ㆍ민족주의적 시각에서 통일에 대해 부던히 고민하고 연구한 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햇볕정책은 기존의 대북정책과는 달리 남북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민족적인, 평화적인 통일로 나아가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대통령의 권위적 결정이 아닌, 오히려 철저하게 한사람의 국민으로서 민족적 과제를 고민한 흔적이 담긴 정책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햇볕 정책은 차가웠던 남북의 시선을 녹이고 따스하게 서로를 바라보도록 민족 모두를 보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벌써 12월이다. 바깥에 나오니 날이 참 춥다. 연말에 씁쓸한 사건을 맞은 국민들의 마음도 참 춥다.
저 멀리 평화광장의 바다는 평온하기만 한데, 오늘도 뉴스에는 국회의원들이니 무슨 장관이니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강경한 대응, 강경책 하는 목소리들로 어지럽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 우리가 추운 것처럼 휴전선 너머 북한 사람들도 참 추울거라는 생각을 한다.
어렸을 때 즐겨읽던 우화에서처럼, 서로의 얼어붙은 맘을 녹이고 굳게 여민 외투를 벗게하는 것은 땡땡 언 찬바람이 아니라 훈훈하고 더운,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햇볕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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