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김대중 정신계승 글짓기대회 입상작 연재
2011년 01월 24일(월) 00:00

‘선생님’이라 불리운 대통령

중등부 대상 광양제철중 윤서영

“10년쯤 한 우물만 파라, 그러면 무엇이든지 얻게 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명언이다. 이 말씀은 나의 모든 생활에 지침서가 되고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목표를 향해 몰두하다 보면 꼭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은 정치인으로서 평탄치 않은 삶의 일부를 보여준다.
중앙정보부의 김대중 대통령 납치 사건을 비롯하여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교통사고를 위장한 살해 위기를 겪었으며, 수차례 낙선의 아픔을 견뎌내면서 묵묵히 민주화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는 진실된 민주화의 아버지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빨갱이’와 ‘선생님’이라는 두 가지 호칭을 갖기도 했다.
‘햇볕정책’이라는 남북의 화해와 포용의 정책으로 얻게 된 그의 호칭이다.
‘햇볕정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태평화재단의 이사장으로 있을 때 처음 불려졌다.
햇볕정책은 바람과 태양과 나그네가 등장하는 이솝우화에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객체는 태양이라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해나가며 평화통일을 이룩하고자 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을 비롯해 최근 연평도 포격사건을 벌여 남북대립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악화일로에 놓여 있다.
북한에 대한 국민의 시선도 따갑고 여론도 좋지 않은 실정이다.
어느 언론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진한 햇볕정책으로 일어난 북한의 도발행위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과연 햇볕정책이 북한 측의 도발을 불러왔을까?
좀 더 넓게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펼친 햇볕정책은 호전적인 북한을 달래 국제무대로 당당히 나오도록 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나아가 세계평화에 기여한 대북 포용정책이다.
국내 쌀 자급률이 높아 남아도는 쌀을 북한에 보내 굶주린 북한 주민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해주고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하자는 큰 뜻이 담겨 있다.
남북의 관계가 원만해지고 우리나라의 신용도가 높아져 외국인 투자자가 많이 국내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로인해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게 되어 국민들이 살기 편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햇볕정책은 국민을 위한 정책, 더 나아가서 나라를 위한 튼튼한 안보정책이리라.
남북분단 상태가 지속되면서 갈등과 반목이 심화되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이끌어낸 사건이 또 하나 있다.
분단 55년 만에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대중 대통령, 그가 남북관계에 진보의 창을 열어준 셈이다.
이후에는 6ㆍ15공동선언에 따라 흩어진 이산가족이 상봉할 수 있었으며, 분단 이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 때는 남북한이 동시입장을 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분단 사상 55년만의 첫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6ㆍ15남북 공동성명을 이끌어 내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달성하고자 했던 그는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노벨상이 제정 된지 100년이 되는 해 수상하게 된지라 더욱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냉전의 시대에서 평화공존의 시대로 이끈 그에게 세계는 영광의 찬사를 보낸다.
“인간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간과 역사를 이렇게 표현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잘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왜곡된 평가도 끊이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빨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연평해전에 대한 대처와 햇볕정책으로 얻은 것이다.
연평해전 전사자에 대한 보상금은 법률에 의해 따랐을 뿐이며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경제력이 높아지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남북 긴장완화를 꾀하고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왜곡형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과 업적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과 정신을 제대로 이해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든 정치적 역경을 묻고, 눈을 감으셨다.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의 길을 걷고자 했고, IMF라는 경제적 위기와 대북포용 정책인 햇볕정책으로 조국사랑을 펼쳐왔던 그.
그런 그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라도 우리는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인동초’라는 그의 별명처럼 오랜 역경을 딛고 영광의 삶을 이룬 ‘하의도’의 작은 섬 소년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나의 아버지, 민주화의 아버지, 조국의 아버지…….
그는 진정 대한민국의 거목이었으며 평화통일의 주춧돌을 세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분이 무엇을 고민하고 염려했는지 안다.
우리는 그분이 살아생전 추진해왔던 민주화, 나라사랑, 남북화해와 협력으로 일관한 그분의 정신과 업적을 계승하여 찬란하게 꽃피워야할 막중한 책임도 떠안게 되었다.
최근의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도발을 보며 김대중 대통령이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뿐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분이 뿌린 민주화와 나라사랑 정신이 머지않아 꽃필 것임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서거 1주기를 맞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기사는 전남매일[jndn.com] 홈페이지(http://www.jndn.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jsnews008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