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김대중 정신계승 글짓기대회 입상작 연재
2012년 01월 02일(월) 00:00

꺼지지 않는 양심, 김대중을 회고하며

고등부 대상 광양여고 이지은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어머니가 빈 그릇을 설거지 하며 콧소리를 섞어 작게 흥얼거리는 노래 가사에는 어떤 옛날이 담겨져 있을까.
열여덟인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어두워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았다. 부정선거와 독단적인 정변으로 민주주의의 역행을 자초하는 나라.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나라. 그곳이 나의 어머니가 이십대였던 시절의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퇴보에 꿋꿋하게 반기를 드는 이가 있었다. 그의 뜨거운 다리는 항상 어디인가를 향해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가 가시밭길을 걷는다며 비웃었다. 심지어 자신이 가는 길에 방해물이 될까 툭하면 훼방을 놓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삐 뛰던 그가 늘 ‘희망’이라는 화살표의 끝을 따가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제 15대 대통령을 지냈다. 2002년도 노벨위원회에서 꼽은 평화상의 주인이기도 하다. 민족정신과 조국애, 그리고 평화. 그의 절룩거리는 왼쪽다리는 그러한 것들을 말해주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그는 젊은 나이에 부패한 정권에 뛰어들어 집권층에 강력히 저항했다. 당시 보수파들은 언제나 그를 견제했다. 그것은 곧 당시 독재 정권의 비 인륜을 여실히 보여주는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이어졌다.
그는 40대의 젊은 나이에 강제적 망명에 고문까지 당해가며 뼈에 새겨졌을 정신적 고통과신체적 장애를 얻어야 했다. 그의 민주화를 향한 올곧은 정신은 결국 국민의 마음에 전이되어 5·18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거사로 이어졌다. 하지만 나약한 민중들이 외치는 독재라도, 민주수호는 잿빛권력 욕심에 눈 먼 권력자의 가슴을 울려줄 수 없었다. 도리어 힘으로 국민의 입을 막고 귀를 막겠다는 식의 무지비한 정치가 이루어졌다. 연이어 등장한 독재정권이 민중의 절실함을 짓밟았던 것이다.
절망으로 사그라들던 민주화의 불꽃을 다시 지펴놓은 것이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었다. 헌법, 그것도 제 1항에 뻔히 민주주의 국가라고 명시해놓은 나라에서 제 국적의 젊은이를 고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뒤 그 사실을 은폐하려 들었던 것이다. 국민은 분개하여 일어났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전국에서 20여 일간 500만 명의 시민들이 봉기하였다. 그 후 전두환 정권의 6·29선언으로 대한민국은 그토록 염원하던 민주주의의 빛줄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심에 바로 고 김대중 대통령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명목상에 그치지 않는, 진정한 민주화를 일구어내는 데에 여력을 다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 신장에 힘썼으며, 모든 이들의 평등과 복지를 실현고자 ‘남녀고용평등법’, ‘국민기초생활법’ 등을 비롯하여 많은 법을 제정하였다. 또, 시인들의 정치 참여를 지원하고 시민단체 등의 자발적 시위, 집회를 장려하여 정책 결정 과정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더욱 넓혔다. 특히 현대 민주주의를 눈에 띄게 발전시킴으로서 IT산업의 성장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그를 논할 적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햇볕정책’이다. 그는 늘 반쪽뿐인 한반도를 아프게 어겼으며, 우리의 형제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져 평생의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에 힘썼다. 그 결과로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으며, 그것을 발 구름판 삼아 이산가족 상봉, 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 등에 매우 큰 공헌을 했다.
중국의 한 대학교수는 그의 평생을 ‘화해’라는 두 음보로 압축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민주국가 국민으로서 너와 나의 화해일 수 있고, 혹은 보수와 진보의 화해일 수도 있다. 동족상간의 길을 걷고 있는 남과 북의 화해일 수고 있으며, 복잡한 이의 대립을 떠난 전 인류적 화해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그가 그 중 어떠한 것도 놓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거하기 직전 잠깐 호흡기를 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토하듯 뱉어낸 한마디는 ‘단결하라!’였다고 한다.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시민으로서, 혹은 한 나라의 아버지로서 짧지만 분명한 지침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올곧은 정신과 행동하는 양심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함이 마땅하다. 젊은 세대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끓는 목소리로 외쳤던 그의 마음을 지금을 사는 우리들은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 온 몸과 온 영혼이 땅으로 꺼지고 하늘로 솟구칠 때까지 그가 갈망했던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남긴 뜨거움을 기어코 이어가야만 한다. 피와 땀을 흘려 값지게 일구어 낸 포도의 열매는 분명히 달다. 이제와 포도밭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두고 다퉈서는 안 된다. 내가 아닌 우리기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동초 정신! 그는 일평생에 그렇게 정의되곤 한다. 우리는 그것을 자자손손 전승해 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행동하는 정치인이자 휴머니스트, 대한민국의 꺼지지 않는 양심이었던 김대중. 그 이름 석 자를 회고할 때마다 우리들의 가슴은 크게 벅차오른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어머니의 콧노래가 끝나면 선반 위에 단정하게 줄을 서 있는 그릇들이 보인다. 깨끗하게 닦여진 그릇들은 이제 제 몸 위에 잘 차려진 음식들이 올려 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민주화라는 기반 위에 어떠한 것을 올려놓는가는 우리의 몫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에게 남겨준 따스한 정신을 이어받아, 진정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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