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회 김대중 정신계승 글짓기대회 입상작 연재
2012년 01월 05일(목) 00:00

김대중 당신을 기억합니다

중등부 대상 순천여중 이혜원

바람이 찹니다. 살아있음을 보여주려는 듯 푸르른 생명력을 자랑하던 산과 들은 조용히 고개를 떨군 채 숨죽이며 기나긴 겨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세상은 춥고 긴 겨울을 이겨내고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것들과 모진 겨울의 추위 앞에 무릎 꿇고 자취도 없이 스러져간 것들이 확실히 구분되어 나타나겠지요?
사계절 중에서 봄이 가장 아름다운 이유는 겨울을 견뎌내고 살아남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목숨을 내던져야 할 만큼 어렵고 힘든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고 당당히 일어선 사람들의 삶에 진심어린 감동과 존경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우리나라의 민주화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는 그 분의 삶에 대해 저는 많은 것을 알진 못합니다. 제 기억 속의 그 분은 우리나라 대통령이셨고, 텔레비전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인 순간으로 소개되며 간간히 보여주던 평양순안공항에서 마중 나온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악수를 나누시던 모습, 2000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분이라는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그 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분이 돌아가신 뒤 특집방송을 통해 그 분의 일생이 방송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된 뒤였습니다.
편안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과는 대조적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보여 지던 그 분의 일생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워보였습니다.
납치와 감금, 투옥과 협박, 고문, 사형이라는 섬뜩한 단어가 그 분의 삶이었다고 할 만큼 반복되는 걸 보면서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편안하게 사실수도 있었을 텐데 목숨을 내놓을 만큼 무섭고 험난한 삶을 그 분은 왜 굳이 선택했을까 하는.
인터넷 검색도 하고 감옥에 갇히셨을 때 가족들에게 썼다는 옥중서신도 찾아서 읽었습니다. 독재정권, 군부독재, 데모, 민주화투쟁, 단신, 투옥, 망명, 연금생활…. 당시의 시대 상황이 얼마나 어둡고 우울하고 힘든 시절이었는지 지금의 저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군인들이 통치하던 어두운 시대에 죽음의 위협과 협박, 고문과 고통스런 시간을 거치면서도 그 분이 찾고자 했던 것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이 땅의 진정한 민주화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당당히 자신을 버릴 수 있었던 그 분의 용기 있는 행동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역사와 경제, 철학까지 옥중에서 가족들에게 쓰셨다는 서신내용은 솔직히 조금 어렵고 이해하기도 힘들었지만 가족을 향한 사랑과 언뜻언뜻 자신 때문에 힘들어 할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져 있음을 느끼면서 그 분 역시 우리와 똑같은 분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거치로 험난한 세월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사신 분이셨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과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분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몰랐었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당연한 듯 생각하며 제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이 평화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겨운 싸움과 목숨까지 바치며 찾고자 했던 민주화를 향한 희생으로 이뤄낸 것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김대중 할아버지가 함께 계셨었다는 것도.
섬 소년으로 태어나 숱한 어려움을 딛고 마침내 대통령이 된 김대중 할아버지의 인생이야기는 인간승리라고 표현해도 옳겠지만 그것보다 저를 감동시키고 놀라게 한 것은 대통령이 된 후 그 분이 보여줬던 참된 용서와 화해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대통령에 당선 된 후 자신을 핍박하고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안겨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분은 그들을 용서함으로써 참된 용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다는 것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만약 제가 그 분이라면 불의를 일삼고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던 나쁜 사람들을 용서하기는커녕 제가 당한 것보다 더 큰 복수를 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할아버지께서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당시 외환위기로 국가부도에 직면해 있어 우리나라 경제는 무척이나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국가부도에 직면해있던 말로만 듣던 IMF체제에서 예상보다 3년을 앞당겨 벗어날 수 있도록 해서 세계를 놀라게 한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새롭게 안 사실은 전국에 초고속 통신망을 설치하고 범국민적 정보화교육을 추진하여 한국을 세계적인 IT강국으로 이끌었던 분이 다름 아닌 김대중 전 대통령 할아버지이셨다는 것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자, 남북의 화해협력 정책인 햇볕정책을 펼치시며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셨던 분이셨다는 것도. 혹독한 겨울에도 멈추지 않고 줄기를 뻗어내고 봄이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인동초와 비유되고 인동초로 불리었다는 김대중 할아버지….
자신의 편안한 삶 보다는 이 땅의 민주화를 바라며 어두운 시대에 죽을 고비를 다섯 번이나 넘기고, 고문과 협박을 당하며 감옥에 갇히고, 망명생활까지 하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과감하고 용기 있는 모습으로 어두운 시대와 맞서 싸우며 긴 시간을 참고 견디며 평생을 사시다 마침내 대통령이 된 그 분의 삶이 인동초와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평생을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사셨고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바랐던 그 분의 간절한 바람은 지금 이뤄지고 있는 걸까요?
말로는 국민을 위한하고 하면서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싸우는 어른들을 보며,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겨울 날씨보다 더 차가워진 남북관계를 보며 하늘에 계신 그 분은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 하는 생각에 씁쓸해집니다.
김대중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김대중 할아버지께서 일생을 바쳐 찾고자 했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화해협력을 위해 펼치셨던 햇볕정책과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셨고 행동으로 보여 주셨던 정신과 업적을 저는 물론이고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학교 가는 길목 어귀엔 내년에도 어김없이 인동초가 필겁니다. 무심코 스쳐 지났던 인동초 꽃 무더기를 보며 저는 분명 김대중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되겠지요. 인동초를 보며 말해줄 겁니다.
‘긴 겨울을 버티느라 힘들었지? 그 동안 몰라봐서 미안해. 내가 사는 이 세상에도 너를 닮은 사람이 있었단다. 춥고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끄떡없이 줄기를 뻗어내고 꽃을 피어낸 너처럼 차갑고 무서운 독재정권의 칼바람을 이겨내고 마침내 이 땅의 민주화의 상징이 된 분이란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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