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김대중 정신계승 글짓기대회 입상작 연재
2012년 01월 10일(화) 00:00
영원히 반짝일 위대한 일생

초등부 대상 하의초 한승하

나는 하의도에 산다. 나는 이 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사를 왔다. 하지만 당연히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출생지인 만큼 점차 커가면서 이 섬이 위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님을 나은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 4월에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서 고향인 하의도에 오셨다. 나는 그 분의 얼굴만 보고도 다정하신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 링컨이 40살 이후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는지 많지 않은 나이에도 공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님이 오셔서 같이 사진을 찍을 때 터지는 수많은 플래시에 나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시면 저렇게 많은 사람이 올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 김대중 대통령님에 관한 책을 처음 읽었다.
책을 읽어보니 어린나이여서 그런지 훌륭하신 분이시라는 건 알았지만 솔직히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안다. 김대중 대통령님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신지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님은 학생 때 일제식민통치에 괴로움을 당하시며 공부하셨는데, 어떤 낳은 김대중 대통령이 일제식민통치를 비난하는 글을 썼다가 급장 자리를 뺏기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청년이 되신 대통령님은 정치의 길에 들어서게 되시는데 국회의원 선거에 3번이나 출마한 끝에 당선되셨다. 하지만 기쁨도 말 그대로 잠시였다.
당선 3일후 5·16군사정변이 일어나 당선이 취소된 것이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다시 출마한 끝에 1963년 제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셨다. 그렇지만 김대중 대통령님은 죽을 고비도 맞으셨다. 1973년 8월 일본 도쿄호텔에서 중앙정보부의 공작원에 의해 납치당하게 되신 것이다.
대통령님을 살해하여 한국 경계에서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의 강력한 경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1주일 만에 서울의 자택에 돌아오게 되셨다.
하지만 모든 활동이 중단되는 가택연금을 당하게 되셨다.
그러나 대통령님은 이에 굴하지 않고 1973년 3·1민주구국선언을 단행, 꺼져가던 민주화의 불씨를 다시 지피셨다. 그리고 끝끝내 대통령이 되셨다.
그래서 햇빛정책, IMF극복 등 큰 업적을 세우신다.
이처럼 김대중 대통령님은 수많은 걸림돌에 넘어지셔도 다시 일어나셔서 정의를 위해 싸우셨다. 우리는 이러한 김대중 대통령님의 정신을 인동초 정신이라고 부른다.
인동초가 아무리 밟히고 잘려도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김대중 대통령님도 옳은 일을 위해 불굴의 신념으로 어떠한 고난도 끈질기게 극복해 가셨기 때문이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님이 이러한 정신 때문에 정상에 앉으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대통령님께서 넘어지셨을 때 포기하고 일어나지 않으셨다면 어땠을까?
지금 우리가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님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도 인동초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길 것이다.
인동초 정신의 뜻처럼 옳은 일을 위해 불굴의 신념으로 어떤 고난이 오든 이겨낼 것이다.
그래서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면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님도 나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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