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회 김대중 정신계승 글짓기대회 입상작 연재
2013년 12월 03일(화) 00:00

새로운 역사의 작가, 김대중 대통령

초등부 대상 자은초 손우민

‘나는 커서 선생님이 될거야!’, ‘내일 토끼머리끈 사야지!’
이렇게 우리가 자유롭게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원하는 물건을 마음껏 사는 등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 덕분이다. 이렇게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책을 어떤 사람이 우리나라에 적용할려고 노력했을까?
‘남북정상회담… 그 날은 꿈과 같은 날이었지’
2006년 6월 15일 남북으로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이 대화로 잠시 행복을 찾았던 회담. 과연 누가 민감한 남북문제를 처음으로 대화로 풀으셨을까?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를 발전시키셔서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신 그 분! 그 분은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시다.
나는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해내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과 감사함을 이 글로 표현하려고 한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들을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3가지의 업적들로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은 1. 민주화의 완성의 주인공.
김대중 대통령께서 대통령이 되시기 전 전 대통령들은 김대중 대통령만큼 민주주의 정책에 힘쓰지 않으셨다.
아니, 김대중 대통령께서 민주주의 정책에 힘을 다른 대통령보다 쏟으신 건지 모르겠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5·16군사정변 이후 약 30년간 역대 군사 정권하에 투옥, 납치, 테러 등 정신적인 피해, 육체적인 피해를 보셨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오히려 민주화 운동을 강력하게 계속 하셨다.
나는 진짜 김대중 대통령이야말로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진실된 분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이 민주화 운동은 자신을 위한 희생도 아니고 국민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인데, 당연히 자신의 이익이 없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이렇게 큰 희생을 하셨기 때문이다. 또 김대중 대통령은 30년간의 온갖 고초에도 꿋꿋이 자신의 뜻을 지키셨는데, 나는 이 부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굽히지 않는 꿋꿋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2. 남과 북이 대화로 하나 되었던 순간. 2000년 6월 15일 남북으로 분단 후 처음으로 대화로 남과 북이 하나가 되었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그 순간을 ‘남북정상회담’이라고 부른다.
이 회담 역시 김대중 대통령이 이뤄낸 새로운 역사 중 하나이다. 나는 이때 태어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 회담을 늦게 알았지만 이 회담을 알고 난 뒤 되게 기분이 좋았고, 기뻤다.
왜냐하면 우리도 북한과의 사이가 좋았던 때가 있다고 하니, 이 회담이 지금 우리 통일사회의 밑바탕이 되어 남과 북이 13년 전처럼 마음만 다시 맞춘다면 지금도 충분히 통일을 할 가을성이 높아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통일사회의 밑바탕을 만들어 주신 김대중 대통령이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3. 그 누구의 상보다 값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200년 12월 10일 드디어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그의 고단한 삶과 나라발전에 평생을 바친 그의 노력의 결과물이 나왔다. 그 결과물의 이름은 ‘노벨평화상’이다. 이날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초로 이 상을 받으셨다. 또 우리나라의 역사를 새로 쓰신 것이다. 정말 이 노벨평화상 그 누구보다 값진 상이었던 것 같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것 같다. 왜냐하면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었을 때 겨우 5년의 시간 밖에 없었는데도 그 어떤 대통령보다 나라를 변화 아니 발전을 시켜놓았기 때문이다.
나의 꿈은 UN사무총장이다. 하지만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 ‘신안’에서 살기 때문에 섬에서 사는 것 치고는 꿈의 크기가 너무 커서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도 나처럼 섬에서 사는 평범한 소년이었는데, 자신이 열심히 노력을 해서 노벨평화상 수상자까지 되신 것을 보니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나도 이제부터 섬이라는 환경 탓을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내 꿈을 꼭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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