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김대중 정신계승 글짓기대회-중등부 대상

평화통일의 밑거름 김대중 대통령

2015년 11월 30일(월) 00:00
상무중학교 1학년 임채원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24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으며 1960년도에 민의원이 당선되었다. 그 후 1971년까지 6·7·8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셨고 1998년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 국정 전반의 개혁, 경제난 극복, 국민화합실현과 법·질서 수호를 국가적 과제로 두고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본격화, 외환위기 극복을 이루어내셨다. 하지만 그 중 단연 으뜸인 것은 평화통일을 위하여 노력하신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화통일을 위하여 어떤 일들을 하셨을까.
그 당시 남한과 북한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50년도 6·25 전쟁 이후 남북관계는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고 서로 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북한은 오랫동안 과도한 군비지출과 경제위기, 김일성 주석 사망과 식량 부족 등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제는 변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북의 긴장관계가 악화되었고 냉랭한 분위기가 흐를 뿐이었다.
우리 정부는 대북한 강경정책을 계속하기가 어려웠고 따라서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협력·화해 적극 추징을 대북한 정책으로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남북화해협력정책인 햇볕정책이란 것을 시행했다. 햇볕정책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만드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라는 이솝우화에서 인용한 말이다. 북측과 대항하고 강경정책만 시행하던 지난날의 정권과는 확연히 다른 정책이었다.
그렇게 햇볕정책을 추진한 후,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완전히 개선되었다. 첫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고 6·15 남북 공동선언도 발표하였다. 남북 이산가족이 상봉 할 수 있게 만남도 주선하였으며 이후 남북 간의 긴장관계는 완화되었다.
화해협력에도 진전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주된 교류 협력으로는 대북한 투자 규모 제한 폐지, 경제협력 활성화 조치, 남북한 비료 협상, 정주영 명예회장의 북한 방문 및 금강산 관광 개발 산업, 개성공단 조성 등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루어낸 성과들을 보았을 때 햇볕정책은 거의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아주 큰 성과를 낸 셈이었다.
하지만 이런 정책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햇볕정책의 장점은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것, 남측과 북측의 이산가족이 상봉할 수 있었다는 것 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점에는 너무 남한 측이 북한 측에 이끌려 다녔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우리나라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더군다나 난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도 아닌 평화적인 방법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에 만족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 덕분에 한층 더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과 접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 시점에서는 햇볕정책이 마냥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도 없다. 만약 그 당시에 여전히 강경하게 대응했다면 어떠했을까. 어쩌면 지금보다 더 상황이 악화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이었기에 그런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한과 북한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좀 더 나은 결과를 몰고 올까. 어떻게 해야 하루 빨리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현재의 나로선 할 수 있는 것이 조금밖에 없다. 부디 평화롭게, 조금이라도 더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측에 다가갔으면 한다. 평화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화해할 수도 있을 거라는 조금의 가능성을 안고 대화로 풀어나가길 바란다. 북한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의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기사는 전남매일[jndn.com] 홈페이지(http://www.jndn.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jsnews008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