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정문화’ 자연과 인간을 잇는 통로가 되다

연재를 쓰던 지난 여름부터 백암산 쌍계루에 오르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인간이 문화를 일구고 누리는 것에 가장 큰 일조를 한 것은 자연이라는 것이다. 산과 강 그리고 들판은 인간들의 삶의 터전이자 쉼터의 역할을 했으며, 문화가 만들어지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백학봉의 웅장한 자태가 일품인 백암산 일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맑은 물이 흐르는 백양골을 따라 불교문화의 정수가 꽃피었으며, 산줄기 곳곳에 남겨진 금석문과 쌍계루의 시서는 문인들에게 있어 자연은 자유로운 문학창작의 공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이러한 모든 것을 아우르고 싶은 욕심에 연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필자의 역량으로는 백암산의 모든 자연과 문화를 제대로 된 시각으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다. 결국 필자는 고민 끝에 자신의 마음속에 끝까지 남아 자리를 잡았던 ‘쌍계루’를 대상으로 연재를 시작하게 됐다.
고불총림 백양사 경내에 위치해 있지만, 사찰 건물들과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곳’에 있는 쌍계루는 이곳을 수년째 오가던 필자에게 있어 항상 안타까움이 가득한 누정 이었다. 일례로 필자가 쌍계루에 오른 어느 가을날이었다. 단체 탐방객 중 일부가 쌍계루 위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한 탐방객이 종이컵에 남은 막걸리 일부를 태연히 누정의 바닥에 뿌리는 것이었다. 필자는 탐방객에 찾아가 그의 행동을 제지하였다. 그러자 그 탐방객은 “이게 촉석루(진주)처럼 유명한 곳입니까? 아래서 보니 사진도 잘 나오고 좋아보여서 여기서 한잔 하다 막걸리 조금 버린 겁니다”라 답했다. 그러했다. 찾아오는 이들은 단순히 ‘사진이 잘 나오곳’ 외에 이 누정의 어떠한 것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필자는 그날 이후 쌍계루를 보며, 언젠가 이 누정이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통로가 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내장산국립공원백암사무소는 이러한 생각을 현실로 만들었다. 2016년 초부터 ‘쌍계루’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자원 관련 사업이 기획·시행된 것이다. 포은 정몽주, 하서 김인후 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남긴 제영시 120여 수가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과 합동으로 번역되어 쌍계루 누정시 연구에 밑거름이 됐고, 백암문화제전 등 다채로운 누정문화 체험행사 등이 열려 누정과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노력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져있던 옛 누정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얼마 전 까지는 자연 풍광을 감상하는 1차 적 기능에 머물렀지만 이후 쌍계루는 담소와 차를 나누는 곳, 명사들과 학문을 소통하는 강학의 전당, 전통문화를 느끼고 체험하는 교감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물론 이는 잃어버린 누정의 기능을 다시 되찾아온 것에 불과할 수 도 있지만, 쌍계루가 명실상부 백암산 지역의 대표 문화자원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고려 말기 최초 건립이후 사실상 처음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누정문화는 국립공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더욱 성숙하게 했다. 누정문학 작품에 나타난 과거 문인들의 자연에 대한 인식을 통해 자연의 참된 가치를 이해했으며, 다양한 누정 문화콘텐츠를 통해 이를 체감했다. 어느덧 쌍계루 중심의 누정문화는 단순한 전통문화가 아니라 어느덧 우리에게 자연과의 교감을 이끄는 보이지 않는 통로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내장산국립공원백암사무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