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용과 떠나는 역사여행<42> 영광 내산서원

붓으로 일본을 움직인 강항 선생 모신 곳

2019년 02월 13일(수) 16:13
일본 성리학의 아버지라 불렸던 강항 선생을 모신 영광 내산서원.
광주를 ‘빛고을 광주’라고 말하는 것처럼 지역 이름 앞에 그 지역을 상징하는 별칭을 붙이기도 하고, 별칭 자체가 그 지역 이름이 되기도 합니다. 전라도에 옥당골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영광군인데요. ‘영광 옥당골’을 검색하면 영광에 소재하는 갖은 상호와 단체가 보이고, 영광이 아닌 곳에서 옥당골 상호를 쓰는 곳은 주인이 영광과 관련되었을거라 보면 됩니다. 영광을 왜 옥당골이라고 했고, 옥당은 뭘까요?



옥당은 구슬 옥(玉)에 집 당(堂)으로 조선시대 홍문관을 말합니다. 그럼 홍문관은 뭔데?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합격한 엘리트들이 정승이 되려면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로 삼사 - 세 관청이 있습니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인데요.

사헌부는 관리 감찰 비리를 처벌하고, 사간원은 왕이 내린 정책이나 고관들의 언행을 비판하는 일을 하며, 홍문관은 임금이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고 임금과 함께 공부하는 관청입니다. 삼사중 임금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홍문관입니다. 홍문관엔 종종 왕이 직접 찾아와 묻기도 했으니, 홍문관 관리는 최고 권력자인 왕에게 인정받을 기회도 많았겠지요. 그런 옥당이 영광의 이름에 붙어 있습니다. 영광이 그만큼 중요한 지역이었다는 말일 텐데요.

영광은 고려시대때 부터 세금으로 걷히는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엔 그 역할의 더 커져 인근 28개 고을의 세곡을 모으고 운반하게 되며, 그것을 총괄하는 이가 영광 사또입니다. 물산이 풍부하니 사람이 많아지고, 사람이 많아지니 거래가 많고 자연 걷어들일 것이 많았겠지요. 그래서 고을 수령은 능력 더하기 청렴을 필요로 해 적어도 홍문관, 그러니까 옥당의 품격이 있는 이가 부임해야 한다고 해서 옥당고을이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옥당골 영광에서 임기를 마치면, 진짜로 옥당이나 아님 다른 중요 직책을 맡아 영전하게 되었구요.

역사여행으로 영광을 오면 종교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법성포는 이름 그대로 백제때 불교가 맨처음 전래되었다고 전해지는 곳이고, 기독교 순교유적이 있으며, 우리나라 4대 종교중 하나인 원불교의 탄생지가 바로 영광입니다. 그리고 저는 역사여행을 하면 유교 서원을 덧붙입니다. 영광엔 내산서원이 있습니다.

서원은 조선 중기부터 생겼던 것으로 현재의 사립대학에 비교되는 고등교육기관인데, 교육기능과 더불어 롤모델로 삼는 분을 모시는 공간도 따로 존재합니다. 향교에서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것처럼요.

내산서원엔 강항이라는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조용필이 드라마 주제곡으로 불렀던 간양록이라는 노래의 주인공이며, ‘간양록’은 강항이 쓴 책 제목입니다.

우리에겐 좀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분이 일본 유학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분입니다. 일본 오오즈시(大洲) 시민회관 앞에 이 분의 비가 세워져 있으며, 비에는 ‘일본 성리학의 아버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 지역에서 사용하는 초등교과서에도 반쪽 분량으로 강항을 소개하고 있고요.

임진왜란. 정확히 말하면 두 번째 침입인 정유재란때. 토요토미는 임진년에 전라도를 차지하지 못한 게 한이었습니다. 전라도 총공격 명령으로 일본군들은 전라도를 유린합니다. 그리고 기술자들과 지식인들을 포로로 끌고 갑니다.

이때 벼슬길에서 잠시 고향으로 물러나 있던 강항은 군량미를 모아 남원성으로 전달하려 했으나 성이 함락되어 이루지 못하고, 영광 앞바다에서 포로로 잡힙니다.

일본으로 끌려가 처음 머문 곳이 오오즈시.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다시 교토로 끌려가고 거기에서 후지와라 세이카라는 승려를 만납니다. 당시 일본의 권력자였던 무사들은 글을 몰랐고, 사회 지식층은 승려들이었습니다.

승려들은 불교 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연구했고, 그런 학구파 승려에게 성리학자인 강항은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창구였던 것이죠. 강항의 학문적 깊이에 감동한 후지와라는 승복을 벗고 강항의 제자가 되어 성리학자로 거듭 납니다. 두 사람의 필담 대화록은 일본 교토 덴리대학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죽음후 패권을 장악한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전쟁의 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의 시대 사회 안정을 위해 성리학에서 말하는 인간 - 상하관계 질서를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기에 강항에게서 성리학을 배운 후지와라가 있는 것이죠.

일본은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칼날을 조선으로 향했지만, 조선은 칼이 아닌 붓으로 일본을 움직인 셈이지요. 그 주인공이 옥당골 영광에 모셔져 있습니다.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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