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고, 또 누군가의 이야기다

박수민 광주청년드림은행장

2019년 07월 04일(목) 17:10
전공은 문예창작학과요. 처음에는 스페인어학과에 입학했어요. 성적에 맞춰간 것도 있지만 당시 공부 잘하던 친구의 아버지가 기자였어요. 스페인어를 배워 놓으면 좋다고 그쪽이 요즘 뜬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언어 쪽에 특별히 관심 있던 것도 아니고. 중간에 2년 정도 휴학했어요. 등록금이 워낙 비싸잖아요. 생활비도 벌어야 했고 집안 사정 때문에 쉬었죠. 집안 사정은 IMF 이후로 완전히 바뀌었어요. 아르바이트를 아침, 저녁으로 두 개 했어요. 휴학 후 문창과로 전과했고요. 취업이 잘 되는 학과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했고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졸업한 후에 2,500만 원 정도 빚이 생겼죠. 학교 다니면서 등록금을 낼 시기가 오면 정말 힘들었어요. 친척들한테 빌려달라고 연락을 하거나 시골에 있는 할머니를 찾아가기도 했어요. 나이 드신 할머니가 무슨 돈이 있었겠어요. 할머니가 고모나 큰아빠한테 받은 용돈을 모아놓은 걸 주시는데 참. 그땐 참 이런 이야기가 부끄럽기도 하고 이야기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나요?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순간 울컥했다. 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말이다. 등록금 이야기를 하러 간 그날 밤 할머니 곁에서 잠이 오지 않는데도 눈 감고 있던 그 시간을. 내 등을 다독이던 그 손을.

나의 20대는 최근 상담을 하면서 만난 청년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난 고민이 된다. 청년미디어 ‘미스 핏츠’의 이수련 대표가 한 인터뷰에서 “미디어에서 청년이 다뤄지는 방식은 두 가지”라며 “불쌍하거나, 괘씸하거나”라고 말했는데 난 불쌍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청년의 불쌍한 이야기는 언론에서 참 많이 다뤘다. 돈이 없어서 굶고 굶는 이야기. 창문을 선택하는데 월 5만 원을 더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청년의 이야기. 기사 속의 사진은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등이 축 처진 뒷모습이 나온다. 너무 흔하지 않은가. 그런데 난 또 그 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군가의 가난을 팔고 싶지 않아 나의 가난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난 그 시간을 지나왔고 그들은 그 시간을 버티고 있다. 버티고 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언제 끝날지 모를 상황 속에서 제발 이게 끝나길. 내가 버텼다고 해서 지금의 그들도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2017년 8월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던 엄마와 딸이 장성군의 한 저수지에 빠진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기사의 댓글에는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돈이 없으면 대학을 안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다. 등록금 때문에 결국 돈 때문에 죽었다.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그 사건 이후 2년이 지났다. 지금은 달라졌는가. 답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이다.

드림은행에서 만난 청년들 중 빚지고 싶어 빚진 사람은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논리를 의심하는 이들이 있어 말한다. 돈이 없으면 안 써야 하고 적게 먹고 더 많이 일해야 하지 않나라는 논리다. 젊으니까. 청년들의 빚은 뭔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공부하다 도전하다 발생한 부채였고 잘 먹고 잘 살면서 생긴 빚이 아니라 그저 숨 쉬는 과정에서 생긴 빚이었다. 그저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모두 자기 탓을 한다. 더 열심히 하지 못한 탓. 불법 금융 피해도 잘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탓.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토끼 눈으로 쳐다본다. 그런 청년이 그렇게 많아? 언론에서 그렇게도 많이 청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저 일부 청년의 삶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기성세대만 그러하겠는가. 청년이 청년을 보는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번도 가난을 빈곤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게 가난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겨내야 할 요소일 뿐이다.

광주청년드림은행은 2017년 청년 부채 실태조사를 통해 시작된 정책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빚 때문에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물론 당장 빚은 없지만 그러한 문제를 겪지 않도록 재무관리 상담도 한다. 지난 1년 동안 구 시청 사거리에서 진행하다 올해는 광주역 앞에서 운영하고 있다. 여기 오면 삶이 확 바뀐다거나 돈 문제가 다 해결된다거나 너의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장밋빛 이야기는 못하겠다. 돈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우니까. 삶의 다양한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이 말은 할 수 있다. 본인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문제는 더 간단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하겠다는 약속. 혼자가 아니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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