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글짓기대회 중등부 대상
2020년 12월 17일(목) 14:28
<수필>
엄마의 도플갱어

광양제철중학교 2학년 4반 남지원

난 우리 엄마와 닮지 않았다. 아빠를 빼다 박았다. 우리 외할머니도 우리 엄마를 닮지 않았다. 이모만 외할머니를 닮았다. 이 나라에 우리 엄마와 닮았다고 할만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 가깝고도 먼 한 나라에 우리 엄마의 도플갱어가 살고 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우리 엄마의 고모, 내 고모할머니이자 우리 엄마의 도플갱어. 그녀는 북한에서 살고 있다. 내게 고모할머니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북한에서 살고 있을 거라는 얘기를 처음 들은 날, 초등학교 2학년이던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할아버지께서 막걸리에 잔뜩 취해 어렵사리 꺼내놓은 이야기는 어린 내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양을 세 보아도, 눈을 꼭 감고 숫자를 아무리 세어도 중간 중간 떠오르는 얼굴도 모르는 고모할머니의 얼굴에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아마 엄마랑 엄청 닮았겠지, 성격까지도 비슷하실까, 지금까지 살아계실까, 결혼은 하셨을까, 어떤 삶을 살아가고 계실까. 그리고 할아버지처럼 가족을 그리워하고 계실까. 내게 있어서는 피 몇 방울 섞이지 않은 먼 혈족이건만 그럼에도 궁금한 것은 별 수 없다. 어린 시절의 내가 느꼈던 그 짧고 굵은 충격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가끔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날에는 악몽으로 나올 정도로.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커가는 걸 볼 때마다 제 누나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붉게 취한 체 웅얼거리며 말씀하셨다.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엄마를 의지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아마 지금쯤 자신이 아는 얼굴보다 훨씬 늙었을 테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날 밤까지는 내심 할아버지의 말을 완전히 믿지 못했다. 아무래도 술에 취하신 상태인데, 그대로 믿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은가? 그 다음날 나는 할머니와 엄마에게 내 고모할머니의 존재를 물었고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동시에 끄덕이셨다. 내 고모할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완전한 진실임을 처음 깨달았을 때 나는 땅이 꺼지고 눈앞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생각보다 분단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실감과 상상도 못한 다른 가족의 존재가 제법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북한을 비하하는 방송이 나올 때마다 묵묵히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났다. 가끔 통일이 되면 좋지 않겠냐며 갑작스레 물어오시던 날들이 모두 이해가 되는 듯했다. 엄마의 고모,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누나가 일부러 북한으로 간 건지, 불의의 사고로 북한에 가게 된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모른다. 은근슬쩍 고모할머니의 얘기를 꺼내면 잘 피우시지도 않는 담배를 주섬주섬 꺼내 들고 밖으로 나가시는데 그 어떤 손녀가 거기서 더 물을 수 있을까. 가끔 뉴스나 티브이에서나 듣던 분단 가족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친근하게 다가오는 그 느낌은 어딘가 이상야릇하면서 가슴을 무언가가 꽉 죄는 듯한 느낌이다. 엄마가 나이를 먹어갈 때마다 고모할머니를 더 닮아간다는 이야기를 후에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그런 엄마의 얼굴을 보며 희미한 제 누나의 흔적을 쫓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유머감각이 있으시고 바둑을 좋아하시는, 호탕한 웃음이 멋있으신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조금은 처량해 보여서 분단국가라는 처절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함부로 위로를 건네기에는 할아버지 혼자 겪어왔을 그 모진 세월들 간의 풍파를 감히 내가 예상할 수 없어서 먼 발치에서 가만히 있어드리는 것 말고는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친할머니가 사는 강원도에서는 바다 너머로 북한이 보이는데, 당장 땅을 밟아도 금방 닿을 듯 그곳이 가깝게 느껴지는데. 그런데 북한에 갈 수도 없고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는게 참 안타까웠다. 고모할머니를 뵌 적도 없는 내가 이리 안타까운데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 돌아가시기 전까지 딸을 찾으셨다는 고조할머니는 대체 무슨 심경이셨을까. 내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이런 이산가족이 조그마한 이 나라에 수백 명은 더 있을 것이라는 거다. 그나마 우리 가족은 고모 한 사람이지만 가족 중 자신만 남한에 있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우리가 이렇게 휴전상태로 남아있게 된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희미해져가는 가족의 얼굴을 겨우 머릿속에서 붙잡는 우리의 조부모님을 위해서라도 통일을 이룰 필요가 있다. 설령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 남과 북은 이산가족을 위해서라도 화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필요성이나 경제성을 따지고 볼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내 할아버지를 위해서도, 이 나라에 있을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지워져만 가는 희미한 얼굴들에 절망해 모진 세월이 전부 담긴 셀 수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할 의무가 있다. 언젠가 그 눈물이 안도와 기쁨으로 바뀔 때까지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노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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