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매일-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평 / 나희덕(시인)

고통 받는 존재에 대한 공감 시인의 중요 덕목

2020년 12월 31일(목) 00:00
나희덕 시인
700여 편의 응모작들을 읽었다. 코로나 시대의 어둡고 우울한 사회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고향이나 농촌을 배경으로 한 생활 시편들이나 자연 친화적인 서정시들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다보니 너무 직설적이거나 감상적인 경우가 많았고, 타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언어적 모색이 아쉬웠다. 그런 중에 발견한 <커튼콜>, <긴장의 재구성>, <개미들의 천국> 등은 참신한 발상과 시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 수작이었다.

<커튼콜> 외 4편은 경쾌하고 발랄한 언어 감각을 지니고 있고 독특한 소재와 형식을 통해 다채로운 시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시적 인식이 충분한 깊이를 확보하지 못하고 재치에 머무르거나 낭만적 우화에 그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긴장의 재구성> 외 4편은 사유의 폭이 넓으면서도 집중도가 있고 시적 대상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돋보였다. 현실의 문제를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사유는 독창적이지만, 전달력이 떨어지거나 거칠고 어색한 문장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개미들의 천국> 외 4편은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간결하고 섬세한 언어로 삶의 비애와 불안을 그려내고 있다. 그의 시는 어떤 간절함을 지니고 있으나 감정을 함부로 발산하거나 낭비하지 않는다. 당선작인 <개미들의 천국>에서 공원 청소부인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슬픔은 절제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먹먹하게 읽힌다. 힘이 없고 고통 받는 존재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은 시인의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에서 당선자의 시선과 마음에 신뢰가 갔다. 그 마음의 힘으로 앞으로도 아름다운 시의 길을 열어가시길 기원한다.



◇약력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파일명 서정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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