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악몽…5·18 광주 성난 민심 ‘들불’

참회 없이 떠난 전씨…이순자, 진정성 없는 사과만
피해자 “고통만 가중”…국가 상대 943억 손배 청구
조사위, 신군부 주요 3인 발포명령 등 진상규명 속도

2021년 11월 28일(일) 20:07
[전남매일=최환준 기자]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픔으로 남아있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회 없이 세상을 떠난 고 전두환씨에 대한 광주지역민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1980년 5월 당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신적 피해자 882명은 국가 배상 청고 소송을 제기했으며, 5·18조사위원회는 고 전씨와 함께 신군부 수뇌로 무자비한 국가 폭력를 자행한 나머지 생존자들에게 ‘그날의 진실’을 고백하라며 압박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또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고 전씨의 부인인 이순자씨의 진정성 없는 사과에 대해 강한 어조로 규탄하고 있다.

28일 5·18 유공자단체 등에 따르면 5·18 당시 입은 정신적 피해로 고통받는 882명이 지난 26일 서울중앙지법에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피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중 848명은 5·18 당시 계엄군 진압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고, 나머지 34명은 유공자 가족이다.

앞서 지난 5월 27일 헌법재판소는 ‘정신적 손해 국가배상 청구권 행사를 금지하는 것은 국가배상 청구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대법원은 헌법재판소 결정을 토대로 5·18 보상법에 근거해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실제 광주지법에선 지난 12일 5·18 유공자 5명에 대해 정신적 손해 배상을 인정했다.

후속 배상 소송 준비도 진행 중이다. 이달 26일까지 5·18 유족회와 부상자회에 접수된 정신적 피해 신고 건수는 각각 180건, 140건이다.

5·18 유혈 진압의 책임자이자 신군부 수괴 전두환은 사과 없이 세상을 떠났지만, 국가 폭력에 희생된 ‘산 자들의 정신적 고통’은 4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 2016년 광주트라우마센터가 벌인 조사 결과, 5·18 당시 부상자·구속자와 그 가족(유족 포함)의 55.8%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호소했다.

5·18 항쟁 직후에도 신군부 세력과 맞서 싸우다 직장과 학교 등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있었다.

5·18 참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제작·배포하면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직장인은 해고됐고, 대학생은 제적을 당했다.

이와 함께 5·18 조사위는 ‘5·18 학살과 인권 유린 책임자’로 35명을 지목하고, 이 중 신군부 중요 인물 5명에 대한 대면 조사를 추진해왔다.

신군부 중요 인물 5명은 5·18 당시 직함을 기준으로 국군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중앙정보부장 서리 전두환, 수도경비사령관 노태우, 계엄사령관 이희성, 육군참모차장 황영시, 특전사령관 정호용 등 5명이다.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정권을 찬탈, 대통령까지 역임한 전씨와 노태우씨는 건강 악화를 이유로 생전엔 조사를 거부하다 한 달 간격으로 숨졌다.

숨진 전씨·노씨를 제외한 살아남은 3명 역시 5·18 당시 전후 군 주요 보직을 차지하며 광주 유혈 진압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현재까지 군 기록·미국 비밀문서를 비롯한 각종 사료와 5·18 조사위 등이 확보한 증언은 1980년 당시 전두환 중심의 이원화된 지휘 체계에 의한 최초·집단 발포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군 지휘 계통의 최상위 의사결정권자였던 만큼, 별도 지휘 체계가 작동했는지 여부 등 발포의 구체적 경위를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5·18조사위는 전씨 사망 직후 입장문을 내고 “지난 41년간 피해자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기회가 있었으나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했다. 결국 5·18 희생자들의 고통을 가중시켜왔다”고 지적했다. /최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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