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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된 민들레

예전에 교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 선생님이 학생을 ‘잡초’라고 꾸중했다고 자살을 했다. 말썽을 부리던 여학생을 지도하면서 선생님이 실언을 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잡초처럼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여 세상을 떠났다. 선생님도 학교를 떠났다. 노란 민들레가 피어 있는 교정에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고, 선생님과…

2022.05.11 14:27

5월이면

5월이어서일까. 하늘빛 물빛이 달라졌다. 겨우내 조금은 검다싶던 물빛이 3월 4월을 지나면서 맑아지는 것 같더니 5월이 되자 푸른 산그리메며 초록 이파리 색에 물이라도 들었음인지 맑은 푸른 빛이다. 하늘도 그렇다. 회색빛에 가깝던 것이 점점점점 맑아져 오월이 되니 가을만큼은 아니라도 청명 하늘이다. 산야가 푸르…

2022.05.04 16:44

불(火)

그날의 불은 정녕 허상이었을까. 어른들 모두 눈빛으로만 끄덕이며 묻어버린 은밀한 기억 속의 일. 건너 뜸 ‘애단’ 언니가 이웃에 사는 친척 오빠와 눈이 맞았다는 괴이한 소문이 나돌았다. 온 동네에 알 수 없는 기류가 극에 달할 즈음, 언니는 머리를 깎였다고도 하고,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고도 했다. 어둑한 골방에 갇…

2022.04.27 18:14

봄 햇살

오랜만의 외출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올봄은 유난히도 더디게 오는 듯하다. 찬바람이 제법 불어오지만 쾌활한 표정의 봄이 다가오고 있다. 그 봄을 제일 먼저 마중하고 싶어, 산에 간다. 얼마 전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지인이 죽었다. 지인의 유가족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곧바로 화장터로 향했다. …

2022.04.13 17:58

프리지어의 선물

훅! 깜짝 놀랐다. 거실의 중문을 열자 몰려든 향기에 숨이 멎을 번 했다. 꽃 멀미, 향기 멀미다. 밤새 이만큼이나 향기를 뿜어냈나 보다. 새봄이라며 후배 문인이 프리지어 꽃바구니를 보내왔다. 샛노란 꽃들이 너무나 이쁘다. 세어보았더니 무려 아흔여덟 송이다. 그들이 밤새 저마다 향기와 색깔을 뽐내며 우리 집에 온 …

2022.04.06 18:13

돌연변이 아이들

어떤 부모는 자기 아이를 돌연변이라고 한다. 분명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타고났을 텐데도 부모를 닮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이유인 즉, 아이들이 부모세대와는 너무 다른 사고방식과 별난 행동을 하기 때문이란다. 특히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걱정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부모보다 더 나은…

2022.03.31 13:53

봄이 오는 강변에서

햇살을 쫓아 강변으로 나왔다. 감기, 미세먼지 운운하는 식구들 성화에 동장군을 맞으러 가는 차림새지만, 마음만은 이미 한 마리 나비가 되어있다. 꽃샘의 매운 바람결을 받으며 천천히 걷다 보니 문득 자연의 일원 중에 사람이 가장 게으르다는 생각이 든다. 더디 오는 봄과는 달리 강물은 표정도 다채롭게 흐르고, 강 둔…

2022.03.23 17:48

나무 식탁을 수십 년째 쓰고 있다. 어느 날 식탁 상판의 옆면에 작은 틈이 생기더니 쩍쩍 벌어져 갈라지기 시작했다. 새로 살까 고민하다가 못질 몇 번 하면 다시 짱짱해질 것 같아서, 상판을 뒤집어 바닥에 내려놓고 탕, 탕, 탕 못을 박는다. 세상의 모든 무너짐은 작은 틈에서 시작했으니, 정신 바짝 차리라며 탕! 틈으로…

2022.03.16 18:08

폐역에서 만나는 그리움의 열매 하나

사람이 다녀야 길이 된다. 수없이 많은 오고 감이 길을 만든다. 기찻길에도 탈 사람이 생겨야 역이 생긴다. 통행이 끊기면 길도 역도 기찻길도 없어진다. 그렇게 없어진 길이며 기찻길과 역도 많다. 흔적이라도 남긴 폐역과 철길은 반갑다. 그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때문이다. 그리움은 슬픔의 색깔을 띠는 것 같다. 그 대상…

2022.03.09 16:06

군자란

꽃샘바람이 불 때면 군자란(君子蘭)은 꽃을 피운다. 겨우내 봄을 기다리던 꽃봉오리들이 개구쟁이들 마냥 ‘저요! 저요!’ 하며 봄 햇살에 활짝 꽃을 피운다. 군자란의 꽃 피는 모양은 천진난만한 아이들같이 순수하고 정겹다. 나는 군자란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다양한 꽃을 가꾸어왔다. 야생화를 가꾸기도 했고, 수백…

2022.03.02 17:52

책 결혼시키기

미국 작가 ‘앤 패디먼’의 저서 ‘엑스 리브리스(Exlibris)’에는 서재 결혼시키기(Marrying Libraries)라는 글이 담겨있다. 작가 부부가 결혼 5년 만에 각자의 책(서재)을 합치는 이야기이다. 영국식 정원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남편의 책과 프랑스식 정원처럼 주제에 따라 정돈미를 갖춘 아내의 책들과의 만남이었다…

2022.02.23 13:28

울림의 문

세상과의 문을 닫고 한때 지리산으로 들어가 은둔한 적이 있었다. 세상과의 문을 닫으니 또 다른 문이 열린 걸까. 그 문은 의외로 들고양이와의 인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사는 집 뒤로는 조그마한 개울이 있었다. 하루는 그 개울물 따라 걷고 있는데, 넙적바위나 뎁히는 심심한 대낮의 햇발 위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2022.02.16 17:11

닮아가는 세월

어지럽다. 하늘이 돌고, 땅이 돌고, 내가 돌고 있다. 빙글빙글 도는 데다 뱃속이 울렁거리더니 토하고 말았다. 아침에 누워서 허리 굴리는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어지럼증이 생겼다. 뇌출혈인 것 같아 아내가 119에 전화하니 코로나 방역복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왔다. 이렇게 죽는가보다는 생각이 들어 유언을 했다. 할 말이…

2022.02.02 17:38

고향 맛

이 나이에도 이상스레 고향이란 말만 들으면 설렘이 인다. 아니 설렘이라기보단 그리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기억에서조차 멀어져가는 것, 그런 걸 붙잡으며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때론 너무 안타깝고 그런 내가 한없이 초라해지기까지 한다. 속수무책 바라만 볼 뿐 아무것도 어쩌지 못하는 무능함 같기…

2022.01.26 18:08

빈 들녘

울부짖듯이 웅웅거리는 거친 비바람 소리. 해마다 이맘때의 바람은 하룻밤 사이 온 들녘을 발가벗겨 버리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웬일인지 모두가 찬사를 던지며 방방곡곡 단풍 구경을 떠날 때는 잠잠하다가도 겨울을 몰고 오는 대지의 가쁜 숨소리에는 잠자코 한 자리에 머물 수가 없다. 벌거벗은 나뭇가지 사이를 휘…

2022.01.19 17:32

그믐달

밤새 누가 그리움이라는 그믐달을 손가락 끝에 앉혀 놓았을까. 인연이 다해 몸밖으로 떠밀린 손톱. 몸에 새겨진 이별의 흔적은 쓰리고 저려, 시간이 흘러도 손톱처럼 자라 그날의 상흔을 다시 끄집어낸다. 첫사랑, 그녀와의 인연은 보름달처럼 환했다. 아득한 나의 먼먼 인생 항로까지 환하게 밝혀 줄 것 같았다. 그녀와의…

지붕 위로 달이 기울고 있다.   |    2022.01.12 17:24

빨간모자

우리 동네 과일 파는 아저씨는 항상 빨간 모자를 쓰고 있다. 이 동네가 막 생겼을 때부터였으니까 올해로 근 20년이다. 그는 변함없이 길거리 노점에서 과일을 판다. 계절에 따라 종류는 달라져도 머리 위의 모자는 언제나 한가지다. 내가 아는 한 그는 한 번도 다른 색깔의 모자를 쓴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벗은 적도 없다.…

2022.01.05 18:08

예언

해마다 새해가 되면 한 해를 예언하는 역술인들의 기사가 실리곤 한다. 과학문명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수천 년 전의 주역이나 점성술 등의 예언을 믿고 살아서는 안 된다. 점쟁이들은 전문가처럼 정확한 정보 분석에 따른 예측 없이 주술적으로 미래를 예언하기 때문에 맞힐 수가 없다. 다만 토정비결처럼 어느 사건에…

#2021122901001004500031701#   |    2021.12.29 15:28

귀갓길

저무는 해와 동무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종종걸음이다. 오늘처럼 진눈깨비라도 휘날리는 날은 으슬으슬 마음까지 스산하다. 도시의 서쪽 끝, 산과 강물로 둘러싸인 동네. 은근히 자랑으로 여기기까지 했는데 이런 날엔 슬며시 부담으로 다가온다. 러시아워의 혼잡한 대열에서 벗어나 비교적 한적하고 신호등이 적은…

2021.12.23 17:40

바닥의 힘

산길을 걷는데 길 한가운데 피어난 질경이꽃이 유난히 예쁘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라 온전한 초록 잎사귀가 거의 없다. 잎사귀 같은 온몸이 발길에 채여 멍들고 아팠을 텐데도, 꽃은 아픈 내색 없이 활짝 피어 있다. 독 오른 뱀처럼 대가리 꼿꼿이 치켜든 신발이 다가오면 질경이의 심장은 오그라들었을 것이다. 두려…

2021.12.15 17:44

그의 담배 혹은 연기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경전을 읽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곱게 물든 단풍도 축축 비에 젖고 있었다. 그 사이로 조금씩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갑자기 담배 한 모금이 간절해진 그는 바짝 향로 곁으로 다가갔다. “이 방은 우리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니 일절 연기가 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언제 보았는…

2021.12.08 16:33

은하수

나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좋아한다. 밤하늘에 신비롭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면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수많은 별들 중에서 어느 이름 없는 행성에 외계인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지구인은 우주선을 타고 가서 UFO(미확인비행물체)를 타고 온 외계인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의문이 이…

2021.12.01 17:46

뒷모습

산천이 온통 스산하다. 초겨울의 매찬 바람결을 이겨내지 못한 생명체들은 하나같이 동면을 서두르고 있다. 두어 해를 비워두어 바람이 숭숭한 시골 오두막. 여미고 다독이며 간신히 입주했다. 생장의 기미를 멈춘 뜰 안의 풍경은 보이는 곳마다 을씨년스럽고 썰렁하다. 도회지에서 끌고 온 것도 아니건만 회색빛 시멘트 담…

2021.11.24 17:13

국화꽃

책장 위에 올려놓고 잊고 있었던 화병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물을 갈아 주고 한 묶음의 가을 절정을 다시 화병에 꽂는다. 지상과 허공 사이의 간극에 물오른 가을 신화를 펼쳐 놓는 국화꽃들로 10월은 뜨거워지고 있다. 저 향기로운 빛깔은 언제부터 삶에 대해 확신이 서 있었을까. 부러워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말…

2021.11.17 18:06

여행자의 노래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네. 아장거리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고 그만큼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쌓인 곳이지. 거기 머문 동안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었네. 어울려 지내던 이웃들이 쏙쏙 빠져나가곤 해도 나는 마땅히 이유가 없었다네. 지내기에 불편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새집을 원하지도 않았어. 식구들 돌보…

2021.11.10 16:59

어떻게 사는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알고 지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무소식이 희소식만은 아니었다. 정년퇴직을 한 후에는 전화도 뜸하여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소식도 잘 모른다. 더구나 내가 자주 전화를 하지 않으니 전화하는 사람도 적어졌다. 어쩌다 걸려오는 전화도 “요즘 어떻게 사는가?”…

2021.11.03 18:10

본향

아침부터 밤까지, 아니 날마다 그냥 쓸쓸하고 슬펐다. 고향 집을 떠난 객지 생활. 좀 더 나은 교육환경 때문이라고 했으나 겨우 9살 아이가 받아들이기엔 가혹한 생활이었을까. 등하교 때는 물론,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시간마저도 부모 형제와 집이 마냥 그립기만 했다.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

2021.10.27 14:36

옹이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왼쪽 엄지발가락이 살살 아파온다. 퇴근 후에 양말을 벗다 말고 왼발을 살핀다. 엄지발가락이 둘째발가락 쪽으로 휘어져 있고, 엄지발가락의 관절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뭉툭한 모양새가 나무의 몸에 박힌 옹이 같다. 서러운 제 속내를 소리 없이 꺼내놓기라도 하는 듯 돌출된 관절이 빨갛게 부어 있…

#2021102001000356300010711#   |    2021.10.20 18:50

언덕배기 그 나무

앵두나무가 있었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다가 꽃 피고 열매 맺을 때면 저절로 눈길이 갔다. 꽃은 화사하고 열매는 붉었다. 알알이 붉은 열매를 보면 어김없이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막상 입안에 넣어보면 과육도 많지 않고 씨앗도 커서 실상 먹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따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아찔한…

2021.10.13 00:34

붉은 소나무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갔더니 천연기념물처럼 잘생긴 소나무가 먼저 이사를 와 있었다. 그 소나무는 가지가 많이 퍼진 ‘300년 된 반송으로 임실군 삼계면 덕계리 무명지에서 옮겨온 다박솔’이라고 안내 표지까지 있었다. 그런데 주민들은 이 소나무를 ‘오억이’라고 불렀다. 5억 원을 들여 소나무를 아파트에 옮겨 심었다고…

2021.10.0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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