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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튀기

뻥튀기 아저씨는 시장 골목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뻥튀기 맛을 기억해낸 골목의 입이 벌써부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부부싸움하느라 밤새 몸집을 키운 소문도 여기로 오면 고소한 맛에 속이 풀려 입에 침이 고인다. 그만큼 이곳의 뻥튀기는 맛있다. 오후 시간이 한가한 나는 오랫만에 뻥튀기 내음으로 배를 채우는 골목…

#2023110901000322000008791#   |    2023.11.15 13:36

국화빵의 추억

세월이 흐르면 흐려지고 잊혀지는 것도 있지만 더욱 생생히 기억나고 더 그리워지는 것도 있다. 까맣게 잊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불현듯 떠오르는 것도 있고 또 그게 실마리가 되어 아주 멀고 오랜 세월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더 많은 것을 불러내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주 만나는 현상들이다. 그게 또 처음 만나는…

2023.11.09 14:35

달빛나루에서 윤동주를 생각하며

내 고향 광양, 섬진강 하구 달빛나루(津月) 망덕포구에는 윤동주(1917~1945) 시비가 서 있다. 그곳에는 ‘별 헤는 밤’ 친필 시비와 유고시 31편의 시비를 모아놓은 정원과 문학길이 있다. 윤동주 시비가 망덕 포구에 있는 까닭은 그의 유고시가 보존된 근대문화유산 제 341호인 정병욱 부친 가옥이 있기 때문이다. 망덕 …

#2023110101000072800001071#   |    2023.11.01 17:36

오두막 이름

십여 년 전, 뒷마당에 얼기설기 집 한 칸을 들어 앉혔다. 동네 위치가 호젓한 산자락에 자리한 데다 도시의 서쪽 나들목 부근이라 오명 가명 지인들이 드나들곤 한다. 가족 모두 오두막이라 부르던 그곳은 바로 그들이 이용하는 쉼터이자 찻집이라고나 할까. 누군가가 불쑥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살림집과는 별개로 홀가분하…

#2023102501000735800023421#   |    2023.10.25 17:19

옷걸이

옷걸이가 방 귀퉁이 못에 걸려 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목을 매겠다는 듯, 비장하고 단호한 흰빛으로 온몸을 감싼 채. 목까지 차오르는 삶의 물음표를 못에 거는 저 성찰의 자세가 결연하다. 옷걸이는 타인의 얼굴을 잘 걸치기 위해 자신의 눈과 귀를 지우고 입술을 뭉개며 버티는 어깨만으로 살아왔다. 타인의 안…

#2023101801000517500016451#   |    2023.10.19 09:01

반가워요

늘 하던 버릇처럼 차 안을 휘이 둘러 봤다. 드디어 책을 보는 젊은이 하나를 발견했다. 그게 그리 신기해 할 일도 아니건만 내겐 가슴이 콩콩 뛸 만큼 반가웠다. 궁금했다. 무슨 책일까.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책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차에서 책을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저 고맙고 신기할 만큼 기…

#2023101201000297100009471#   |    2023.10.11 20:51

그날의 축제

그날 이태원에서는 광란의 축제가 있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열리지 않았던 할로윈 축제에 10만 인파가 몰려와 외국인 26명을 포함하여 156명이 압사하고 320명이 부상을 당했다. TV 뉴스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치안과 위기 대응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슬픔과 분노가 치솟았다. 축제는 참가자들이 일상에서 일탈하여 광…

#2023100401000090600003051#   |    2023.10.04 17:18

틀에서 벗어나기

넓고 자유로운 사고는 글을 쓰는 사람이 가져야 할 최상의 조건이다. 참신한 시선과 능동적인 표현 안에서 독특한 체취의 글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칠 때마다 번민이 일곤 한다. 정해진 규칙이나 격식에 스스로 얽매어 아등바등할 때도 그렇고, 부당함 앞에 쉽게 따지고 들 용기조차 못 내고 쩔쩔…

#2023092101000701400020501#   |    2023.09.20 23:56

말에도 각도가 있다

말(語)은 상대방의 귀에 다다르기 전에 자신의 각도를 먼저 잰다. 입안에 있을 때부터 말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혀 위에서부터 각도를 재기 시작한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복종을 요구하는 말은 90도 각도의 거만함이 혀에서부터 숨어 있다. 90도로 허리 숙이는 조직폭력배의 인사처럼 그 말에 실린 복종이…

#2023091301000428800012501#   |    2023.09.17 17:35

잘라가지 마세요

우리 집 앞에는 한 아름도 넘는 큰 포기의 수국이 아주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그 싱싱한 푸르름과 등등한 기세는 3층인 우리집 창문에서 내려다보기만 해도 기분을 좋게 하여 내 마음까지 밝게 해 준다. 지난해에는 거기서 피어오른 꽃봉오리들이 어찌나 탐스럽고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지 볼 때마다 내 입이 벙그러지곤 했…

2023.09.06 16:27

영혼을 남기고 떠난 화가

밤하늘의 별을 보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이 떠오른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1889년에 프랑스 생레미 요양병원에서 밤하늘의 별과 달, 주변 마을의 풍경과 고향에서 본 첨탑과 사이프러스 나무를 상상하며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정신병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우주…

2023.08.30 20:25

등산로에서

동네에 있는 등산로를 오르곤 한 것이 꽤 오랜 세월이다. 등산로라고는 하지만 가벼운 운동화로도 충분할 정도로 밭둑, 논둑을 따라 야트막한 숲속으로 난 정겨운 길이다. 길은 흔적이다.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길이 아닌 곳을 용감하게 헤치고 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수많은 길이 만들어진다.…

2023.08.30 20:24

등산로에서

동네에 있는 등산로를 오르곤 한 것이 꽤 오랜 세월이다. 등산로라고는 하지만 가벼운 운동화로도 충분할 정도로 밭둑, 논둑을 따라 야트막한 숲속으로 난 정겨운 길이다. 길은 흔적이다.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길이 아닌 곳을 용감하게 헤치고 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수많은 길이 만들어진다. 그…

#2023082301000708500020411#   |    2023.08.27 01:02

갯메꽃

갯메꽃의 발목이 투명하다. 그 발목은 인내하는 자세로 삭막한 모래언덕에 초록의 잎 마디마디 붙이며 한낮을 건너고 있다. 울음의 표정은 쉽게 자라나기에 꽃입술 꽉 깨물고 안간힘으로 뜨거운 모래밭을 기어가고 있다. 갯메꽃의 뒷모습이 처절하다. 여고 2학년 하굣길에서 동네 선배에게 유괴된 그녀의 시간처럼. 내가 …

2023.08.16 16:56

세 번이나 젖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옷을 입은 전신으로도 비바람이 마구 몰아쳤다. 이러다 못 보면 어쩌지 하는 불안으로 가슴이 마냥 콩닥댔다. 백두산 북파 코스로 오르는 길이다. 한데 내 급한 마음만큼 걸음을 빨리할 수도 없게 마구 부딪치는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 초조해지는 발걸음 가득 자꾸만 하늘만 쳐다봐 졌다. 바람은 부는…

2023.08.10 15:12

대나무꽃

대나무는 따뜻한 남쪽지방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그런데 전남과 경남 지방에 7, 8월이 되면 대나무가 꽃이 피어 말라 죽고 있다. 대나무는 땅속줄기로 자라는 식물로 모죽은 5년 동안 땅속에서 자라다가 죽순으로 나와 1년에 20미터 이상 자란다. 그 후 50년가량 살다 수명이 다하면 대나무가 한꺼번에 꽃을 피우고 죽는다.…

#2023080201000128900002491#   |    2023.08.02 19:03

선택과 책임

살아오는 동안 숱하게 부딪치는 선택의 순간들 앞에서 늘 가슴 떨리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엄마가 좋으니? 아빠가 좋으니?” 손가락 서너 개로 겨우 나이를 꼽던 코흘리개였지만 질문하는 어른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어쩌다 생긴 용돈으로 군입정 거리를 고르는 일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하굣길 내리 입에 물어…

2023.07.26 18:33

풍경 소리

찻집 뒤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놋쇠 물고기를 매단 작은 종이 보인다. 바람이 분다. 얼기설기 얽힌 허공의 사슬을 푸느라 한 바구니의 바람이 철퍼덕 쏟아지며 놋쇠 물고기를 건든다. 허공 수면에 파문 일으키며 담장 너머로 댕그랑 댕그랑 풍경 소리를 나르는 놋쇠 지느러미가 반짝 빛난다. 맑고 청량한 소리에 마음이 평…

2023.07.19 21:32

유명하지 않은 행복

오랜만에 옛날 친구들과 함께 한다. 옛 친구들과 만나면 온갖 이야기들이 시끌벅적 쏟아진다. 60년 전 악동의 전설까지도 나온다. 고향으로 학교로 친구로 이어지며 다른 인연의 끈을 끌어내기도 한다.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하고 있을까 싶은 것도 있다. 그러면서 이런 요란스럽고 유쾌한 대화는 유명하지 않기에 가능한 …

2023.07.12 23:27

백비의 묵언

지난달 ROTC 14기 총동기회의 충청지역 문화탐방에 부부가 참여했다. 하루 일정으로 청남대, 계룡대, 대전 현충원을 탐방했다. 현충원의 호국영령들의 묘비에는 이름과 생몰연대, 업적이 기록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6·25전쟁 영웅 백선엽 대장과 이등병에서 장군이 된 우리 동기의 아버지 최갑석 소장의 장군묘를 참배했다…

2023.07.05 17:26

순례자를 꿈꾸며

어느 날 우연히 눈에 들어온 ‘제프리 초오서’의 운문 설화집 ‘캔터베리 이야기’. 중세 영국의 최대 시인이며 ‘영국시의 아버지’라고 칭하는 초오서는 현실과 인간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셰익스피어에게 영향을 주어 셰익스피어 문학의 출발점을 이루게 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대가족 속에서 어린 날을 보낸 …

2023.06.28 22:00

간고등어

어물전 좌판에 간고등어가 떡 하니 자리하고 있다. 결코 밀리지 않겠는다는 듯 한물간 시절이 상석을 차지하고 있다. 벌어진 간고등어의 입에서 망상과 혼돈이 흘러나오는지 비린내가 가득하다. 소금에 절여진 저 망상이 없었다면 간고등어는 이미 심해의 무덤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상어에 쫓겼을 어둑컴컴한 길이 등줄기에…

#2023062101000693000019741#   |    2023.06.21 22:00

먹고 싶다는 것

아내가 뜬금없이 육회를 먹고 싶다며 같이 사러 가자고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안 풀려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라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얼마 전 산책길에 목장을 함께 한다는 한우점을 지나면서 회원등록을 했더니 오늘도 연락이 온 모양이다. 소를 잡는 날엔 더욱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회원 알림이…

2023.06.14 22:00

사각지대 사람들

이웃에 사는 열두 살 소녀가 죽었다. 가난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못한 채 꺾인 풀꽃처럼 시들어버렸다. 소녀에게 콩팥을 기증하는 이도 없었고, 콩팥을 사서 수술할만한 형편도 아니었다. 신장병에 약초가 좋다는 소문만 믿고 달여 먹였더니 병세가 악화되어 밤새도록 부모를 보채다 세상을 떠났다. “엄마, 아빠! 내 병…

#2023060601000160800004031#   |    2023.06.07 22:00

내 마음속의 꽃등불 하나

여학교 시절의 나는 아름다운 성(城)의 요정이었다. 여자들이 행주치마로 돌을 날라 쌓았다는 전설의 성안에 자리 잡은 우리들의 요람. 그곳은 꿈과 이상이 무르익는 소녀들만의 천국이었다. 이른 봄, 눈부신 햇살이 아름드리 노송(老松) 사이로 금실 은실을 쏟아부으면 백마 탄 왕자님이라도 내려온 듯 탄성을 지르곤 했다…

2023.05.31 22:00

감자

농부는 재 묻힌 씨감자를 밭에 심고 있었다. 칼을 댄 자리가 비명처럼 아득했을 텐데, 감자는 온몸에 돋은 눈으로 토막토막 잘리는 몸을 어떻게 쳐다보았을까. 쭈글쭈글 썩어 가는 몸에서 독해지며 끝끝내 돋은 눈. 감자의 눈은 한때 증오를 품은 시퍼런 칼날 같은 주먹이었을 것이다. 감자의 어디에 독을 품은 마음이 주먹…

2023.05.24 22:00

행복한 숙제

금요일 밤은 손녀들이 자유로운 시간이란다. 밤늦게까지도 놀 수 있고 다음 날이 토요일이라 늦잠도 잘 수 있단다. 손녀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희 집에서 같이 자는 걸 좋아한다. 해서 금요일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이들 전화를 받고 우리 부부는 딸네로 향한다. 오늘도 그렇게 딸네로 향했다. 어떤 때는 저녁을 먹고 …

#2023051701000582000017051#   |    2023.05.17 22:00

라일락꽃 피던 교정

라일락은 첫사랑의 꽃이다. 라일락의 꽃말이 ‘첫사랑’이듯 나에게 ‘첫’이라는 말은 가슴 설레며 잊히지 않는 추억이다. 교직에 처음으로 발령을 받은 남녀공학 고등학교에는 봄날 이맘때쯤이면 라일락꽃 향기가 교정에 흩날렸다. 초임 학교에서 나는 풋풋한 학생들과 함께 젊은 날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들은 윤…

#2023050801000282800007841#   |    2023.05.10 22:00

꽃비

천지를 뒤덮고 있던 봄꽃들이 그새 비가 되어 내리고 있다. ‘꽃 한 조각 떨어져도 봄빛이 줄거늘 수만 꽃잎 흩날리니 슬픔 어이 견디리.’라고 읊었던 두보(杜甫)의 마음속에라도 들어앉은 양 4월의 빛나는 태양 아래서도 눈앞이 희붐하다. 이런 심사로 살아생전 천상병 시인은 그토록 ‘동심초’라는 가곡을 좋아했을까. …

2023.05.03 23:00

수건

수건은 온몸이 귀다. 작고 동그란 올이 귀 모양 같다. 저 수만의 귀가 물소리에 붙어산다. 캄캄한 청력의 한밤중에도 수건은 철썩이는 물의 꽃에 눈을 뜬다. 사십여 년 전에 목욕탕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목욕탕의 보일러실과 남탕 때밀이를 담당했던 김 기사는 동트기 전에 지하실에 있는 쪽방에서 올라와 손님 맞을 …

2023.04.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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