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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숙제

금요일 밤은 손녀들이 자유로운 시간이란다. 밤늦게까지도 놀 수 있고 다음 날이 토요일이라 늦잠도 잘 수 있단다. 손녀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희 집에서 같이 자는 걸 좋아한다. 해서 금요일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이들 전화를 받고 우리 부부는 딸네로 향한다. 오늘도 그렇게 딸네로 향했다. 어떤 때는 저녁을 먹고 …

#2023051701000582000017051#   |    2023.05.17 22:00

라일락꽃 피던 교정

라일락은 첫사랑의 꽃이다. 라일락의 꽃말이 ‘첫사랑’이듯 나에게 ‘첫’이라는 말은 가슴 설레며 잊히지 않는 추억이다. 교직에 처음으로 발령을 받은 남녀공학 고등학교에는 봄날 이맘때쯤이면 라일락꽃 향기가 교정에 흩날렸다. 초임 학교에서 나는 풋풋한 학생들과 함께 젊은 날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들은 윤…

#2023050801000282800007841#   |    2023.05.10 22:00

꽃비

천지를 뒤덮고 있던 봄꽃들이 그새 비가 되어 내리고 있다. ‘꽃 한 조각 떨어져도 봄빛이 줄거늘 수만 꽃잎 흩날리니 슬픔 어이 견디리.’라고 읊었던 두보(杜甫)의 마음속에라도 들어앉은 양 4월의 빛나는 태양 아래서도 눈앞이 희붐하다. 이런 심사로 살아생전 천상병 시인은 그토록 ‘동심초’라는 가곡을 좋아했을까. …

2023.05.03 23:00

수건

수건은 온몸이 귀다. 작고 동그란 올이 귀 모양 같다. 저 수만의 귀가 물소리에 붙어산다. 캄캄한 청력의 한밤중에도 수건은 철썩이는 물의 꽃에 눈을 뜬다. 사십여 년 전에 목욕탕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목욕탕의 보일러실과 남탕 때밀이를 담당했던 김 기사는 동트기 전에 지하실에 있는 쪽방에서 올라와 손님 맞을 …

2023.04.26 23:00

부시다

눈이 부시다. 거실 창으로 보이는 하늘과 나무와 꽃들이 어쩜 저리도 조화로울까. 하늘 높이 날아가는 이 순간의 저 새 한 마리는 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창가에서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문주란꽃의 요염하고도 풍만함은 또 어떤가. 목련이 피었다 졌다. 벚꽃도 피고 졌다. 그 옆에서 아가의 첫…

2023.04.19 23:00

도깨비가 살던 고향

옛 사람들은 도깨비와 더불어 살았다. 그 당시에는 도깨비들이 참 많았다.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어두운 밤이면 헛것들이 도깨비로 보였다. 도깨비는 사람이 죽은 뒤에 생기는 귀신과는 달리 사람의 모습이나 도깨비불로 나타난다. 대개 도깨비는 빗자루, 절굿공이, 도리깨 등 오래 쓰다 버린 일상용품이 변해서 된…

2023.04.12 23:00

푸른 바다를 위하여

고향에 있는 고인돌박물관에 다녀왔다. 고인돌의 축조 방법과 다양한 양식은 물론 무덤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증거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관람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둘러보다가 선사인들의 생활상을 재연해 놓은 움집 앞에 다가가는 순간, 무엇엔가 붙잡히기라도 한 듯 우뚝 멈추어 서고 말았다. 모닥불이…

2023.03.29 23:00

마지막 항해

암이 재발해 다시 수술한 그는 라면으로 끼니 때우며 옥탑방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생(生)의 닻을 슬픔이라는 벼랑에 내리기 시작했다. 그 벼랑은 축축하고 어두워 혼밥과 혼술만 드나들었다. 철썩철썩 부서지는 외로움의 따귀 맞으며 그의 고립은 그 누구와도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간혹 탈출하고…

#2023032201000707800021691#   |    2023.03.22 23:00

봄, 생명, 그 눈부신 아름다움

봄, 봄을 본다. 생명의 봄이다. 봄은 돌아오는 계절이다. 하지만 떠나는 것도 있다. 해서 산다는 것은 때로 슬픔을 이겨내는 것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속수무책으로 떠나는 이들을 망연히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슬픔으로 가슴에 안은 게 두 달 새에 여섯 분이나 된다. 원로 수필가 네 분과 시인 두 분이 1월과 2월 두 달…

#2023031501000471200014251#   |    2023.03.15 19:07

꽃향기에 술이 취하다

봄 뜨락에 달빛이 은은하다. 혼자 술을 마시다 달빛에 이끌려 술병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정원이 아름다워 조경상을 두 번이나 받은 우리 아파트 화단에는 매화, 산수유 등 봄꽃들이 피어 화사하다. 새로 지은 무등산아이파크로 이사 오던 해에 분재에서 옮겨 심은 홍매화가 붉게 피어 향기롭다. 이백(李白)의 시 ‘월하…

2023.03.09 09:06

봄이 오는 뜰에서

빈틈 없이 여며두었던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창틀을 넘나들던 햇살을 따라 싱그러운 바람 한 자락이 와락 밀려든다. 온 집안이 소생의 소리로 출렁거린다. 탁자 위 난초 화분에서도 신비로운 생명의 기척이 있다. 지난겨울 폭설로 울음 터가 되어버린 시골집 마당이 떠오른다.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2023.03.01 23:55

가시

선인장 화분을 옮기다가 넘어져 몸에 가시가 박힌다. 몸에 뿌리를 내리는 사막의 뼈가 날카롭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속내를 바람벽에 적기 위해 가시연필을 예리하게 깎아 한 자 한 자 쓰고 있었던 것일까. 가시가 빠지지 않는다. 도망치듯 사막을 떠난 뼈가 잡힐 듯 말 듯 숨어 있다.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는 그 은밀한…

2023.02.22 23:55

옷이 무겁다

인디언들은 2월을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이라 했다. 꽃바람, 봄이 오고 있다는 말쯤으로 들린다. 그래서일까. 아침에 코트를 입으려는데 어제는 느끼지 못했던 무게감이 느껴졌다. 신기했다. 밤사이에 옷이 더 무거워진 것은 아닐 텐데 옷을 꺼내 입으려는 내 손에 느껴지는 무거움은 이젠 이 옷 그만 입으라는 것 같…

2023.02.15 23:55

웃는 얼굴이 행복하다

한국 사람들은 잘 웃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이 잘 웃지 않는 것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웃음이 헤픈 사람은 점잖지 못한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고 악어와 같다고 한다. 얼마나 얼굴 표정이 무뚝뚝하면 험상궂은 악어에 비유했을까? 얼굴은 ‘얼의 꼴’로 그 사람…

2023.02.08 23:55

매듭

졸업의 계절이다. 코흘리개 유치원 아이들로부터 시작해 학위를 받는 대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인생 여정 속의 한 장을 접느라 부산하다. 대체로 조촐하게 치르는 입학식과는 다르게 졸업식장은 축하 분위기로 들떠 있다. 끝보다는 시작의 의미를 크게 생각하는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아마 무사히 마침에 대한…

2023.02.01 23:55

폐가

골다공증을 앓은 지붕의 한쪽이 내려앉아 있다. 인기척을 벗은 폐가는 꽤 오랫동안 비워져 있는 듯하다. 무너진 벽에서 시름시름 곰팡이 핀 울음이 보인다.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이 사라져, 어느 날 갑자기 실직당한 폐가는 많은 시간 우울증을 앓았을 것이다. 실의에 빠졌던 감나무의 산발한 머리가 아직도 떡…

2023.01.25 17:05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이다 보니 오고 가는 인사마다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참 듣기 좋은 말이다. 복이란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서 우리 생활 속에도 조금만 눈여겨보면 숫가락에도 복, 베개에도 복, 그릇에도 복이 새겨져 있었다. 그만큼 복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고 가장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복…

2023.01.19 12:20

떨켜

하늘에 별똥별이 떨어지듯 나뭇잎이 떨어진다. 나무는 겨울이 오기 전에 떨켜를 만들어 스스로 잎을 떨어뜨린다.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인간도 낙엽과 같다. 늙으면 나뭇잎 떨어지듯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는다. 야생동물들도 겨울나기를 위해 털…

2023.01.11 17:44

‘말을 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며 정확한 발음으로 마음의 진실을 전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도 그런 자세로 들어야 한다.’ 가끔 독백처럼 읊조려보는 대화의 상식이다. 학창 시절, 존경하고 따랐던 작문 선생님은 잠시 성우를 하셨던 분이었다. 시냇물이 흐르는 듯한 자연스런 목소리는 물론 발음, 단어와 단어 …

2023.01.04 18:39

압력밥솥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봄솥의 꽃망울들이 칙 칙 칙 기적 소리 내며 꽃잎 열고 있다. 뜨거운 혁명처럼 봄의 밑바닥은 달궈져 소란하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봄의 추가 칙 칙 칙 맹렬하게 달리며 꽃피우고 있다. 나도 한때 봄날 같은 청춘의 솥에 쌀알 같은 신앙 한줌과 꿈 한줌을 넣고 열정의 불…

2022.12.28 18:20

대단하고 황홀한

나이만 들면 그냥 할아버지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이는 나이일 뿐 외모로 보여지거나 법적인 나이 따라 그렇게 불려질 수는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최소한 손자나 손녀가 있어야만 할아버지가 된다. 말하자면 손주가 할아버지라고 불러줄 때에야 비로소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동생처럼 지내는 k교수한…

2022.12.21 17:43

메타세콰이아 여인

20여 년 전, 어느 문예지에 등단작가 수필 심사위원을 할 무렵이었다. 몇몇 투고자의 작품과 함께 촌스런 이름을 가진 어느 여성의 수필이 내 이메일에 갇혀 있었다. 문예지 회장에게 전화를 하여 그녀의 수필은 등단시키기엔 미흡하다고 했더니 고쳐서라도 꼭 등단을 시켜달라고 했다. 얼굴도 모르는 여인에게 전화를 했…

2022.12.14 19:58

12월의 일상

12월 OO일. 두 마음의 나를 보았습니다. 잿빛 안개에 싸인 거리 곳곳에서 문득문득 만나곤 하는 대상 없는 그리움, 슬며시 그 뒤를 따라 들어와 감당할 수 없게 하는 쓸쓸함. 그 둘은 타협 없이 맞서는 평행선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품어 안아 싹을 키우는 동조자임을 알았습니다. 한 가지에서 난 꽃송이처럼 함께 피어나…

2022.12.08 09:36

스니커즈

백화점에서 철 지난 계절 떨이하듯 신발을 싸게 팔고 있다. 때 마침 과속으로 치닫는 걸음을 지탱해 온 구두는 낡아 있다. 신발끈을 묶지 않고 조였다 푸는 방식의 신발이 눈에 띈다. 유행을 팔기 위해 하고픈 말이 많아 보이는 신발이 반짝반짝 빛난다. 신어 보니 엄청 편하다. “이 소가죽 스니커즈는 양복에도 잘 어울…

2022.11.30 18:11

예쁜 냄새

손녀가 나를 보자 냅다 달려와 품에 안긴다. 나도 꼬옥 안아준다. 아이의 작은 가슴에서 팔딱이는 숨소리가 가슴으로 느껴진다. 귀보다 가슴으로 듣는 소리가 더 좋은 것 같다. 매 주일 우린 이렇게 교회에서 만난다. 뭐가 그리 바쁜지 좀처럼 한가롭거나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아이들도 바쁘고 제 아빠 엄마도 마…

2022.11.23 17:02

꼬꼬마

하늬바람 부는 계절이면 연을 날리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연을 만들어 하늘 높이 날려 나의 소년 시절의 소담한 꿈을 아이들에게 오롯이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연날리기를 좋아했다. 학교를 마치면 감나무에 매달아 두었던 가오리연을 가지고 빈 들판 바람받이 언덕에서 동무들과 함께 연을 날렸다. 동무들 중에는 …

2022.11.16 18:44

가을날, 문득…

순전히 소슬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 탓이었다. 창망하게 드높은 하늘도 한몫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소화(素花)를 찾아 나서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쑥 길 위에 섰다.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로 가는 길, 주암호를 건너 석거리재에 이르는 동안 길가엔 코스모스가 온 힘을 다해 가을을 피워내고 있다. 흰 꽃이라는 뜻의…

2022.11.09 16:26

헛꽃

목수국 꽃이 탐스럽다. 헛것의 힘으로라도 넘보아선 안 될 것을 넘보고 싶다는 뜻일까. 헛꽃이 화려하다. 가녀린 줄기에 달린 한 무더기의 허세. 나도 저 허황기처럼 영웅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헛꽃을 피운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하루는 친구가 자신의 딱지를 자랑했다. 그 당시 우리는 색이 바랜 …

2022.11.02 22:35

동짓달 열이틀

한 해 중 가장 마음이 급해지는 달이 동짓달일 것 같다. 동짓달은 그 해의 달력 마지막 한 장을 남기기 전의 달이기에서만이 아니라 올 한해도 다 가고 있네 하며 한 해의 끝을 실감하는 때여서이다. 하지만 내게 동짓달은 또 다르다. 바로 내가 태어난 시작의 달이면서 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마지막의 달이기 때문이다…

2022.10.26 18:05

마음의 빛깔

마음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이다. 과학자들은 사람이 하루에 6,000가지의 생각을 하며, 즐거움, 사랑, 희망, 슬픔, 분노, 질투, 역겨움, 두려움, 죄책감의 아홉 빛깔의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감정은 지혜나 경험, 습관에서 비롯된 생각들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마음 상태에 따라…

2022.10.2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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