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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육필 편지를 받아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편지가 주는 정감 그 따스하고 흐뭇한 느낌을 맛본 지도 참 오래된 기억이다. 물론 문우들 중에도 부산의 ㄹ 수필가처럼 지금도 육필 편지를 보내는 자상함을 보이는 몇이 있긴 하다. 하지만 나부터도 시간에 쫓기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문자나 카톡을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얼마 전 딸네가 왔을 때 우리 동네 마지막 남은 우체통이 없어질까 봐 내가 걱정을 했더니 그걸 듣고 잊지 않았나보다. 아빠가 이 마지막 하나 남은 우체통을 지키기 위해 우표를 사다 놓고 가끔씩 우편물을 우체통에 넣어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저도 자기네 동네 우체통에 그리 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 우리 가족은 참 편지를 많이 썼다. 나도 아내도 딸과 아들 두 아이도 편지를 즐겨 썼다. 군에 간 아들이 제대를 하면서 가져온 두터운 화일엔 편지가 한가득 꽂혀있었다. 아빠 엄마 누나의 편지를 골고루 받은 군인은 저밖에 없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그러했겠지만 나도 아내와의 결혼 전 오간 편지도 꽤 많다.
나는 책을 받으면 필히 편지로 축하와 고마움을 전했었다. 지금은 못 하고 있지만 가끔 문단 행사에서 만나는 후배들이 오래전 받은 편지의 감동을 말하곤 한다. 그만큼 편지의 감동은 크다. 왜일까. 수고하는 만큼의 보내는 사람 마음과 정성이 들어 있어서가 아닐까.
나도 편지를 많이 보냈지만 받은 편지도 많다. 지금 남아있는 문단 어르신이나 문우들의 편지만도 박스 가득이다. 그걸 정리해 보려다 못하고 숙제로만 남아있다. 이젠 대부분이 이 세상을 떠난 고인들이시다.
잊을 수 없는 편지도 많다. 이해인 수녀의 꽃 편지도 그렇고 법정스님이 정채봉 형 기일에 산소에 다녀왔다며 보내주신 편지도 그렇고 신봉승 강범우 박규환 홍승주 선생님처럼 장문의 작품 평으로 격려해 주신 편지가 있는가 하면 김시헌 이유식 신세훈 성기조 선생님들처럼 엽서로 축하와 감사를 보내주신 것도 있다.
딸아이의 편지를 받아 읽다 보니 지나온 시간들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거의가 못해 준 아쉬움의 것들이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 이만큼 잘 자라 결혼하고 자식 낳고 가정을 꾸려가는 것이 그저 대견하고 감사하다.
오늘도 마침 택배 우편물이 있어 우체국엘 간 김에 책 부칠 우표와 보통우편 우표를 열 장씩 사왔다. 요즘은 편지를 보내고 싶어도 우체통에 넣으려면 우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체통은 있어도 우표를 파는 곳은 우체국뿐이다. 이처럼 편지 하나를 보내기 위해선 여러 과정과 수고가 필요하다. 편지를 쓸 때도 볼펜인가 연필인가 만년필인가에 따라서도 느낌이 달랐었다. 편지지를 어떤 것으로 하느냐에 따라서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나는 원고지를 만들어 편지지로도 썼다. 편지지보단 원고지에 편지를 쓰면 왠지 더 기분이 좋았다. 작가라는 긍지도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편리함과 신속함을 우선적으로 중시하는 현대이니 이런 편지가 소외 시 될 수밖에 없다. 대신 쉬워지는 만큼 정의 깊이도 얕게 전해지고 무게감도 덜할 수밖에 없다. 막상 딸애의 편지를 받고 보니 은근히 답장 부담이 된다.
나 때문에 딸애는 편지를 쓰는데 정작 그 편지를 받은 나는 답장을 할 게 부담이 되니 이미 편리함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 그래도 이런 부담을 느낀다는 것도 즐겁고 감사할 것 같다. 이런 거룩한 부담감이 가끔씩은 내게도 편지를 쓰게 할 것이고 오늘 사 온 우표도 있으니 그 우표도 써야 할 것이 아닌가.
딸애의 편지를 다시 읽는다. 감사하다는 내용들이 하나같이 내게선 못 해 줘서 미안하다란 답으로 읽힌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편지, 전엔 편지 쓰는 날도 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 그런 날을 부활시키면 국민 정서 함양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 오늘은 나도 우표도 사 왔으니 딸애에게 답장의 편지를 써서 오랫동안 굶었을 우리 동네 우체통에 밥을 먹여줘야겠다. 딸애의 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는 책장 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편지지를 꺼낸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답장부터 해야겠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아빠로부터 편지를 받는 딸애의 기뻐하는 표정도 눈앞에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