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숙 광주동부교육지원청 교육장 |
최근 제주의 한 중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담임 교사의 제자들이 남긴 편지다. 제자들은 고인이 학생들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던 분인지 기억하며,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울부짖었다. 이 편지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다. 오늘날 교단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은 절규이며, 교권 보호의 시급함을 다시금 일깨우는 경고다.
2023년 7월 서이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의 비극적 죽음은 큰 충격과 자성의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교육부는 교권 회복을 위한 ‘교권 보호 5법’(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원지위법, 아동학대처벌법)을 제·개정하며 교사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자 했다. 법의 핵심은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고, 피해 교원의 회복을 도우며, 학생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있다.
제도는 만들어졌으나 현실이 달라지지 않았다. 제주 교사의 죽음이라는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하고 며칠 사이에 전국 곳곳에서 또 다른 교권 침해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교사가 생활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보호자의 민원이 폭주하고, 무분별한 고소, 교육청까지 이어지는 과도한 진정과 조사가 반복된다. 가르치는 일을 위협하는 민원 대응의 최전선에 교사가 내몰리고 있다.
문제는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사의 권한과 존엄이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단지 법령의 허술함 때문만이 아니다. 교권 침해 문제를 개별 교사의 문제로 방치하고,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조차 의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 큰 원인이다.
현재 교육 관련 법령 어디에도 ‘교권’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공무원법은 단지 “교권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선언적 문구로만 남겨두었고, 교원지위법 제14조는 ‘교권 침해’라는 용어조차 피하고 ‘교육활동 침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 용어 선택은 오히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원의 교육활동이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교사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활동이 곧 학생의 학습권을 지탱하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교육기본법은 교원, 학습자, 보호자 각각의 역할이 소통과 협력 속에 조화롭게 작동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일부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은 교사를 위축시키고, 이는 곧 학생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인격과 삶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행위다. 교사의 교육활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교실에서, 교육공동체의 작동은 중단된다.
이제는 교사를 가르치는 사람 이전에 ‘전문가’로서 존중해야 한다. 교사에게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학생을 지도할 권한이 있다. 이는 특권이 아닌 책무이고, 학생을 위한 최선의 교육을 설계하기 위해 부여된 공적 권한이다. 교사의 권한은 국회의원의 입법권, 경찰의 단속권과 같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능이다. 이러한 교사의 권한이 인정되고 보호받을 때 비로소 교육이 가능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법 개정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다. 사회 전체가 교육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함께 인식해야 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며, 공동의 목표인 ‘학생의 온전한 성장’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교권 보호는 교사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교육이라는 국가적 책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임을 모두가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교실의 평화 없이는 교육의 미래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단에 선 수많은 교사들이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교육이 다시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교실에서의 존엄과 안정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지켜내는 길이다.